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가진 것과 갖고 싶은 것의 마음을 정리해 손편지를 썼다. 며칠 후 조병수건축사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첫 미팅에서 조 건축가는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금쌀이라도 재배하시나봐요?” 그건 조롱이 아니라 따뜻한 관심과 호기심의 표현이었다.
그는 농가 주택에도, 재생 건축에도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미국 몬태나에서의 유학이 많은 영향을 줬다. 나무와 철판으로 소박하게 지은 건물은 눈에 편했고 마음에도 이물감 없이 들어왔다. 천장 틈새로 들어온 엷은 빛이 바닥에 떨어지는 모습도 잊히지 않았다. 영성의 빛은 종교 건축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설계비는 비쌌지만 어떻게든 조 건축가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가 힘껏 가격을 깎아준 덕분에 아버지의 창고는 두 번째 삶을 살게 됐다. 스테이와 카페로 운영되는 이곳의 이름은 ‘파란곳간’. 전북 부안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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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트는 객실의 후면. 편백나무 노천탕에 발을 담그고 라운지체어에 등을 기대앉으면 드넓은 초록 들판이 아득하게 펼쳐진다. 저 멀리 신작로를 따라 간간이 차가 지나고 그 너머로는 보드라운 능선의 내변산이 걸쳐진다. 조 건축가와 합을 맞춰 온 전용성 선생의 조경 솜씨도 인상적이다. 노천탕 앞으로 둔덕을 만들고 그 위로 잔디를 깔아 풍경에 리듬과 볼륨을 불어넣은 모습이라니…. 둔덕 앞뒤로는 큼직한 파초와 적당한 키의 남천, 가녀린 얼굴의 작은 꽃을 최소한으로 심었다. 일견 허름하고 소박한 건물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큰’ 디자인과 감각, 무엇보다 시골과 자연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헤아리는 마음이 녹아 있다.
하나둘 찾는 사람이 늘면서 ‘파란곳간’은 조금씩 더 활기를 더해 가는 중이다. 서울에 있던 남동생 둘도 고향으로 내려와 쌀농사를 지으며 스테이 운영을 돕고, 쌀빵을 만든다. 매일의 삶에 어머니도 함께 있다. 자식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이 꼭 큰돈만은 아닐 것이다. 이런 삶의 풍경, 지키고자 하는 무언가가 마음속에 있고 그걸 위해 힘껏 달리기도 하는 삶의 태도 역시 부모가 줄 수 있는 귀한 유산이 아닌가 싶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