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형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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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워싱턴포스트(WP)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내부 문서를 입수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지난달 한미 무역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에 연 30조 원 이상의 국방비 증액을 요구하는 것을 검토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6%(약 66조1640억 원)였던 한국의 국방비 지출 규모를 3.8%(약 97조1660억 원)까지 늘릴 것을 요구하려 했다고 한다.
규모와 시기를 최종 합의하기까지는 한미 간 논의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대규모 국방비 증액은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된 모양새다. 말 그대로 한국이 감내해야 할 트럼프 시대에 또 하나의 ‘글로벌 뉴노멀(새로운 표준)’인 것이다.
예외인 동맹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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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연간 GDP 대비 1% 중후반대의 국방비를 지출해 온 일본에 대해서도 유럽 국가들의 상황을 예로 들며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차관이 일본의 국방비 지출을 GDP의 5%까지 올려야 한다고 밝혀 3%대 증액을 검토 중이던 일본 측의 거센 반발을 샀다고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전했다.
국방비 증액 압박, 피하기 어려워
이 같은 트럼프 행정부의 국방비 증액 압박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 개인 성향과 미국의 글로벌 안보전략 변화 의지가 담겨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사업가로 활동하던 1980년대부터 미국의 동맹들이 안보 비용을 제대로 부담하지 않는다고 불평해 왔다. 당시 그는 신문 광고와 방송 출연 등을 통해 “수십 년째 동맹들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공짜 보호 아래서 부유한 국가가 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지난해 미 대선과 재집권 뒤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슷한 내용의 발언을 했다. 한국을 콕 집어 경제적으로 부유하면서도 충분한 돈을 국방에 투입하지는 않는다는 발언도 했다. 동맹에 국방비를 더 쓰게 만드는 건 트럼프 대통령에겐 오래전부터 별러온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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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확신과 미국의 큰 전략 변화가 있기에 미국의 국방비 증액과 안보 역할 확대 압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만든 뉴노멀을 받아들이는 게 보다 현실적일 것이다. 국방비 부담이 늘더라도 안보와 미국과의 관계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국방비 증액 규모, 활용 방안, 나아가 이를 토대로 미국과의 협력을 어떻게 강화할지에 대한 고민을 더 치밀하게 해야 할 때다.
이세형 국제부장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