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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과 캄보디아가 잠깐의 전쟁을 했다. 확전되진 않았지만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 1960, 70년대 베트남전쟁 당시 캄보디아는 애꿎은 피해를 당했다. 미군 전쟁사에서 가장 한심한 결정이 베트남으로 향하는 전쟁물자 수송로를 끊겠다는 목적의 캄보디아 폭격이었다. 베트남에선 방공망 탓에 미군 전폭기들이 되레 피해를 입었지만, 캄보디아에는 그런 방공망이 없었다. 마구잡이 폭격은 엉뚱하게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주의 집권만 도왔다.
폴 포트가 일으킨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인구 4분의 1 이상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미군 폭격에 의한 희생자 수에는 과장이 있지만, 킬링필드에 미국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이후 1999년까지 캄보디아는 크메르 루주와 내전 상태를 이어 갔다.
베트남전쟁기에 실전으로 단련된 베트남 인민군의 전투력은 대단했다. 미군도 그 실력을 인정했다. 크메르 루주도 실전 경험으로 자신감을 다졌지만, 베트남군에 도전했다가 2주 만에 수도 프놈펜이 함락됐다. 다만 북부 정글과 산악지대를 기반으로 한 게릴라 투쟁은 난공불락이어서 세계 최고의 정글전 능력을 자랑하는 베트남군조차 고전했다. 이 과정에서 태국군은 크메르 루주 및 베트남군과 국경에서 교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이 이번 국경 분쟁의 한 원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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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한 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