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칼럼니스트
후행 힙은 불편을 즐기며 예전 요소들의 멋과 의미를 찾아낸다. 최신 힙스터에게는 디지털카메라가 한 세대만에 구형이 됐지만 레트로 애호가들에게는 2000년의 초창기 모델도 감성 물품이다. 유행을 넘어 시장 수준으로 커진 LP도 비슷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조선시대 골동품이나 자개장도 ‘힙 아이템’으로 소비한다. 이 역시 광의의 후행 힙이라 본다. 종이책이나 문자미디어를 읽는 텍스트 힙도 후행 힙에 해당하지 않을까. 책은 옛날부터 있었으니까.
최근 몇 달 동안 필자는 ‘텍스트 힙’의 시대가 온 것 같다는 관련 인사들의 묘한 들뜸을 느꼈다. 서울국제도서전의 인기 비결은 굿즈 판매와 연예인의 등장이 아니었다. 실제로 책이 많이 팔렸다는 사실이다. 젊은이들의 호응으로 베스트셀러가 되는 시집들. 세상이 변하나 싶었다. 철새가 돌아온 것처럼 대중교통 속에서 책 읽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는 걸 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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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른바 힙이 되면 그 뒤 추이도 비슷하다. 힙이라 불리던 일군의 경향은 아주 높은 확률로 유행에 머무른다. 한철 흥행을 넘어 사람들의 생활로 스며드는 건 극소수다. 최근 5년 동안 힙했던 걸 떠올려 보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종이책을 즐기는 텍스트 힙 역시 시장 궤멸 이후 한때의 유행으로 끝날까 두렵다. 당장 힙에 기대 몇 푼 벌고 마는 게 좋은 것일까? 그런 면에서 텍스트 힙에 대한 낙관론은 중요한 사실을 외면하고 있다.
한국 도서계가 주력해야 하는 건 굿즈, 지식재산권(IP) 사업, 정부 지원 등이 아닌 양질의 독자 개발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훌륭하고 재미있는 책을 만들고, 그 책의 훌륭함과 재미를 알리려 지속적으로 다가가고 노력하면 된다. 이러한 거시적 노력 없이는 기술 발전, 제도 개선, 유행이 모두 무의미하다. 누군가 반론할 수도 있겠다. 지금 당장 살아남기도 힘든데 그런 이상적인 일을 어떻게 하느냐고. 한국의 출판뿐 아니라 문화시장 전반이 바로 그 근시안적 면모 때문에 점점 얄팍해진다.
박찬용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