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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는 문재인 정부의 1호 교육 공약이었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서 보듯 학생들이 쉬는 시간마다 각자 원하는 수업을 들으러 부산히 오가는 장면을 우리 학교에서도 실현해 보자는 것이었다. 취지엔 많이들 공감했다. 학생 스스로 적성과 진로에 맞게 배울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해 고질적 입시 위주 교육에서 탈피하자는 데 누가 반대하겠나.
▷하지만 2018년 추진 초기부터 우려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이 원하는 과목을 다양하게 개설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가르칠 교사가 부족했다. 학교 간 격차도 문제였다. 일부 사립고나 명문고는 강사진과 재정이 풍부해 해볼 만했지만 공립고나 지방에선 쉽지 않았다. 학생들도 불안해했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꾼다고 하는데 그 경우 대입 학생부 전형에서 어떻게 변별력을 갖출 것이며, 수능 공부는 결국 학원에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혼란스러워했다.
▷고교학점제와 정교히 맞물리도록 입시 정책을 손봤어야 할 정부는 오히려 역주행했다. 학생별 교과 선택과 성취 내용이 중시되는 고교학점제는 수시 전형과 부합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조국 사태 이후 대입 공정성을 높인다며 수능 위주인 정시 비중을 40%로 끌어올렸다. 내신을 절대평가로 바꾸고 외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당초 계획도 윤석열 정부로 바뀌며 무산됐다. 윤 정부는 게다가 대학 무전공 선발을 확대해 고교생들이 진로 탐색보단 성적 올리는 데 더 매달리도록 만들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제도 안착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어야 할 7년이 그렇게 어영부영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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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정책이 자리 잡으려면 최소 10년 이상 걸린다고 한다. 그런데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눈길 끄는 정책을 내놓고 반발에 부딪혀 지지부진하다 다음 정부에서 또 새 정책을 내놓는 패턴이 반복돼왔다. 윤석열 정부가 졸속으로 추진했던 AI 교과서가 이번 정부 들어 폐기될 처지에 놓인 것도 그런 사례다. 거창한 ‘1호 교육 공약’보단 기존 정책이라도 완성도 있게 매듭지어 학교의 혼란을 줄여주는 게 국민을 더 생각하는 정부다.
신광영 논설위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