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연습실에서 만난 박윤재 발레리노는 “먼 미래엔 아이들을 가르쳐보고도 싶다”며 “제대로 재능을 펼치지 못하는 원석같은 아이들이 반짝반짝 빛날 수 있도록 돕고 싶기 때문”이라고 미소 지었다.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185cm의 큰 키에 탄탄한 기본기, 섬세한 감정선까지 갖춰 무용계에선 이미 ‘완성형 인재’라고 평가받는 박윤재 군(17)의 이야기다. ‘전 세계 무용수들의 등용문’으로 불리는 로잔발레콩쿠르에서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로 1위를 차지한 뒤 세계적인 발레 학교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3일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만난 박 군은 “영국 로열발레 스쿨 등 많은 곳에서 감사하게도 제안을 주셨다. 그중 가장 행복하게 춤출 수 있는 곳을 골랐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최종 결정은 ‘미국행’이다. 최근 서울예고에서 나와 9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발레 학교인 JKO스쿨에 입학한다. 한국인 발레 스타 서희, 세계적 발레리나 이자벨라 보일스턴 등을 배출한 학교다. “지난해와 올해 ABT 무용수들의 내한 공연을 보면서 ‘참 즐겁게 춤춘다’ 느꼈어요. 많은 공연을 봤지만 군무진까지 빠짐없이 행복해 보이는 건 처음이었어요. ‘여기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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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군은 콩쿠르 우승 기자회견에서 ‘꿈의 배역’으로 꼽았던 ‘돈키호테’ 바질 역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다른 유망주이자 “둘도 없는 친구”인 이채은 양과 돈키호테 3막 그랑 파드되로 호흡을 맞춘다. 한 손 리프트, 피쉬 다이브 등 고난도 기교가 특징이다. 그는 “어머니께서 보여주시는 영상으로 발레를 접하던 꼬마 때부터 좋아했던 배역”이라며 “왕자나 귀족과 달리 밝게 춤추면서 자유롭게 뽐내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국내 첫 정식 무대를 앞둔 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로잔발레콩쿠르 1위 박윤재 발레리노. 박형기 기자 oneshot@donga.com
“타이즈에 부스러기 묻는 게 싫어서 에너지바도 안 먹을 정도로 예민해요. 또래보다 힘과 테크닉이 부족하다 느껴서 자책도 자주 하고요. 하지만 이 작품을 출 땐 ‘나는 왜 안 되지’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요. 제목처럼요.”
첫 공연을 앞두고 그가 느끼는 떨림은 긴장이 아닌 설렘이다. 박 군은 “무대를 즐기기 시작한 건 오래전 일은 아니”라면서 지난해 동상을 받은 제54회 동아무용콩쿠르를 떠올렸다. 그야말로 ‘애증의 콩쿠르’라는 것. 그는 “중학생 때 실수를 너무 많이 해서 악몽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지난해 콩쿠르에서 ‘지젤’의 알브레히트 왕자 독무를 추면서 처음으로 무대를 온전히 느꼈다”며 “전막으로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것도 ‘지젤’이 됐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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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수라는 직업은 수명이 짧은 편이니 언젠가 관객이 저를 기억하지 않는 순간이 오겠죠. 그렇다 해도 마치 한 자리에서 오래도록 빛나는 별처럼, 제 자리를 지키면서 끝까지 춤출 수 있도록 노력할 거예요.”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