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미술가 터렐 14일부터 개인전 빛과 공간의 독특한 체험 제공… 뮤지엄 산 상설전시관 등 인기 신작 ‘웨지워크’ 등 25점 선봬… “나는 빛 한조각 전하고픈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2021년 설치 작품 ‘상상, 넓은 직사각형 곡면 유리(Imaginings, Wide Rectangular Curved Glass). 발광다이오드(LED) 조명과 에칭 유리(표면을 뿌옇게 가공한 유리)를 활용해 벽면에서 빛이 스며드는 것 같은 효과를 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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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비추거나 드러내기 위한 빛이 아닌, ‘빛 그 자체’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1일 한국을 찾은 미국 미술가 제임스 터렐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관심 있는 ‘빛’을 재료로 작품을 만들고 싶었지만 딜레마가 있었습니다. 빛은 분명 물리적 실체가 있지만 나무나 금속처럼 조각할 수 없잖아요. 음악가가 원하는 소리를 악기를 통해 만들어 내듯, 빛을 생산하는 악기가 필요했어요.”
터렐은 이런 고민 끝에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텅 빈 곳에 가득 찬 빛 속에 푹 잠기거나, 눈부신 빛의 파장이 먼 곳이 보이지 않도록 뿌연 장막을 만들고, 때로는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설치 작품으로 ‘빛의 존재감’을 드러내 왔다. 14일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개막한 터렐의 개인전 ‘리턴’은 ‘글라스워크’ 연작 4점과 신작 ‘웨지워크’ 등 25점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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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한국을 찾은 미국 미술가 제임스 터렐. 뉴시스
그의 신작 ‘웨지워크’를 감상하면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앞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입구를 지난다. 그다음 붉은빛이 테두리처럼 설치된 공간이 보이는데, 그 속에서 또 다른 조명이 하나씩 켜지면서 공간의 형태를 관객은 서서히 인식하게 된다. 20분간 빛은 서서히 변하는데, 이 변화에 따라 빛은 마치 뿌연 연기나 얇은 장벽처럼 보여 ‘빛이 물리적 실체’임을 실감하게 만든다.
터렐은 이에 대해 “빨간색이 뜨겁고 푸른색이 차갑다고 생각하지만, 행성을 볼 때는 푸른 별이 더 뜨겁고 붉은 별이 더 차갑다. 뜨거운 별일수록 파장이 짧은 빛을 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익숙하지 않았던 빛을 경험하며 어지러움을 느끼다가 그 낯섦을 견디면 긍정적인 느낌을 받으면서 새로운 것을 얻게 된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에는 터렐이 미 애리조나 플래그스태프 인근에서 만들고 있는 대형 전시관 ‘로든 크레이터’에 관한 판화도 전시된다. 2014년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선보인 설치 작업 ‘아텐 레인’을 판화로 재현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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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문화가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K팝, 클래식 음악은 물론이고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인들이 한계에 도전하고 있죠. 저는 그런 문화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입니다. 빛과 예술을 사랑하는, 그저 빛 한 조각을 전하고 싶었던 평범한 예술가로 저를 봐주기를 바랍니다.” 9월 2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