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정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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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감의 계절’이 돌아왔다. 금융위원회가 부실자산을 인수해 처리할 ‘배드뱅크’ 설립 검토에 착수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에 발맞춰 대출 탕감 논의가 급물살을 탄 것이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단순 채무 조정을 넘어 실질적인 채무 탕감이 필요하다”며 “다른 나라는 국가 부채를 감수하면서 코로나19 피해를 책임졌던 반면 한국은 돈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대응해 결국 국민 빚만 늘렸다”고 지적한 바 있다. 금융위는 발 빠르게 금융권의 장기 연체 채권 규모 등을 파악하며 코로나 대출 탕감을 위한 배드뱅크 설립 시 재원 마련 방안, 기획재정부에 예산을 얼마나 요청해야 할지 등을 따져 보느라 분주하다.
사실 정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민생지원책’이 바로 빚 탕감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3월에도 금융위원회는 약 33만 명을 대상으로 장기 채무를 최대 50% 탕감해주는 방안을 발표했다. 2017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60만여 명의 장기 소액 연체자들의 채무를 전액 면제해주거나 일부 감면해줬다.
코로나19에 이은 경기침체 장기화로 자영업자들이 빚에 짓눌려 있어 어느 정도 지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금융 당국과 금융권은 2020년 4월부터 코로나19로 인해 자금난에 처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대출에 대해 만기 연장과 상환 유예를 제공해 왔는데 그 ‘청구서’가 이제 곧 돌아온다. 당장 3개월 뒤 만기가 돌아오는 코로나 대출 규모는 50조 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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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 계층의 자립과 재기를 돕는 정책은 필요하고, 자영업자들이 위기 상황에 내몰린 것은 맞다. 하지만 탕감은 조심, 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며 지원 규모나 기준 설정에도 신중해야 한다. 어려우니까 빚을 과감하게 없애준다는 식의 파격적인 선심성 정책으로 흘러가다가는 ‘빚은 갚는 것’이라는 원칙이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 가장 기본적인 원칙마저 흔들리면 우리 경제에 긴 후유증이 두고두고 남을 수 있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는 시작이요, 그 도덕적 해이 때문에 금융회사들의 서민들에 대한 대출 자체가 쪼그라들 수 있는 것이다.
본보가 취재했던 자영업자 A 씨(50·여)는 1억 원이 넘는 빚을 30% 이상 감면받았음에도 다 갚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털어놨다. “사람인지라 중간중간 ‘안 갚고 포기할까’란 유혹이 적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수없이 위기를 넘기고, 스스로 다잡으며 힘겹게 빚을 갚은 그들에게 대규모 탕감이 얼마나 큰 허탈함을 불러일으킬까. 단골 민생대책 ‘탕감’이 쉬운 듯 보여도 절대 쉽지 않은 이유다.
장윤정 경제부 차장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