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NOW] 1948년 독일 디자이너가 개발… 오드리 헵번이 입어 세계적 유행 올 시즌 패션 하우스에서 주목… 슬림한 상의에 플랫 슈즈 매치
하루에도 수없이 바뀌는 게 유행이라지만 이번엔 좀 의외다. 무릎을 덮는 어정쩡한 길이로 종아리를 더없이 짧아 보이게 만들던 카프리 팬츠가 트렌드로 돌아올 줄이야. ‘비율파괴템’으로 불렸던 이 팬츠에 패션계가 다시 열광하고 나섰다.
카프리 팬츠는 1948년 독일 디자이너 소냐 드 레나르트가 개발한 팬츠다. 이탈리아 카프리섬을 여행하던 중 해변을 걷기에 다소 거추장스러웠던 팬츠를 과감히 잘라낸 것이 시작이었다. 무릎을 덮는 부담스럽지 않은 기장과 잘록한 허리선, 옆트임 디테일로 곡선미를 가득 살린 이 바지는 등장과 동시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이 바지를 섬의 이름을 따 ‘카프리 팬츠’라 명명했다. 1950∼60년대 카프리섬을 찾은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 휴양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카프리 팬츠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높아진 데는 할리우드의 영향이 컸다. 배우 오드리 헵번은 1954년 영화 ‘사브리나’에서 그녀에게 꼭 맞게 재단된 지방시의 블랙 카프리 팬츠에 플랫 슈즈를 신고 등장해 세계적 유행을 불러일으켰다. 우아하면서도 경쾌한 그의 스타일은 그해의 시그니처 룩이 됐다. 오드리 헵번을 비롯해 매릴린 먼로, 브리지트 바르도 등 당대 스타들이 앞다퉈 카프리 팬츠를 착용하면서 세련된 아이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961년 미국 시트콤 ‘더 딕 반 다이크 쇼’에서 메리 타일러 무어가 독립적인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며 선보인 카프리 팬츠 역시 큰 화제를 모았다. 여성의 바지 차림이 드물었던 당대 분위기에 카프리 팬츠는 성의 해방과 자기표현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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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유행은 돌고 도는 법. 올 시즌 현대적인 실루엣과 다양한 소재, 감각적인 스타일링으로 무장한 카프리 팬츠가 컴백을 예고하고 있다. 내로라하는 패션 하우스들이 저마다 1950∼60년대 고전의 상징인 카프리 팬츠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고 나선 것이다.
와이드 팬츠와 스키니 진 등에 밀려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카프리 팬츠가 올 시즌 현대적인 실루엣과 다양한 소재로 돌아왔다. 유명 패션 하우스들은 이번 봄여름 컬렉션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다양한 카프리 팬츠를 선보였다. 블라우스와 카프리 팬츠를 매치한 셋업 룩으로 우아함의 정수를 보여준 타미 힐피거(왼쪽 사진), 클래식한 재킷과의 조합으로 세련된 오피스 룩을 선보인 캐롤리나 헤레라(가운데 사진), 도시적인 그레이 셋업을 보여준 샌디 리앙(오른쪽 사진). 각 브랜드 제공
신진 디자이너들의 활약도 인상적이다. 샌디 리앙은 도시적인 그레이 셋업으로 ‘카프리 팬츠=올드 패션’이라는고정관념을 단번에 깨트렸고, 필리카 K는 카프리 팬츠를 메인으로 한 간결하고 정제된 북유럽 스타일로 주목받았다.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토템은 무릎 아래로 떨어지는 여유로운 핏으로 편안함과 세련미를 동시에 잡아냈다. 알렉산드라 로에게 호브는 니트 소재를 적용한 여유로운 카프리 팬츠 스타일로 포멀부터 캐주얼까지 아우를 수 있는 스타일을 제안했다.
카프리 팬츠를 실패 없이 입기 위한 팁은 바로 비율과 균형에 있다. 전문가들은 “슬림한 상의에 타이트한 팬츠를 매치한 뒤, 재킷이나 카디건처럼 볼륨감 있는 아우터를 더해 실루엣의 대비를 주라”고 조언한다. 슈즈 선택도 중요하다. 발등이 드러나는 플랫 슈즈나 미니멀한 스트랩 샌들, 슬링백 키튼 힐 등으로 발목 라인을 드러내면 다리 라인이 자연스럽게 정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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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은 패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