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로드중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한국인의 행복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무엇보다 진단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심리사회적 알로스타시스(allostasis)’의 관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알로스타시스는 뇌가 스트레스에 대처하기 위해 각종 대처 자원과 관계된 예산을 편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체 및 정신적 시스템을 운영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이 시스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흔히 ‘생체시계’라고 불리는 시상하부다.
생체시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통상의 시계와는 다르다. 시계가 물리적인 시간의 흐름을 측정한다면, 생체시계는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정도를 평가한다. 일반적으로 시간의 흐름과 스트레스가 축적되는 정도는 비슷하게 보조를 맞추게 된다. 예컨대, 오전 7시에 아침 식사를 한 다음 5시간이 경과하는 것과 신체가 5시간 동안 스트레스를 경험하는 정도는 상응하는 정보에 해당된다.
광고 로드중
심리사회적 알로스타시스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지표로 자살률과 출산율을 들 수 있다. 특히 한국의 출산율은 2013년부터 러시아와의 갈등이 증폭돼 현재 전쟁까지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출산율과 그 변화 양상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이는 현재 우리 사회가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음을 나타낸다. 즉, 한국인 약 5200만 개의 시상하부가 급성 백발증이 유발될 때처럼 과부하 상태에 있는 것이다.
‘전쟁 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실제 전쟁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위기 앞에서 눈을 감는 것은 미성숙한 대처의 전형이다. 미성숙한 사람은 고통을 외면하고 회피하는 반면, 성숙한 사람은 고통조차도 기꺼이 끌어안는다. 성숙한 사람은 삶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가장 어두운 순간과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맞닿아 있으며 행복의 본질이 아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쁨에 있다는 점을 믿는다. 부디, 새 정부는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전쟁 같은 삶의 문제를 이전 정부처럼 지나치게 낙천적으로 바라보지 말고, 우리 앞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기를. 현실을 직시할 때에만 비로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는 법이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