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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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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곡미술관에서 우연히 만난 작가 노정빈 씨가 보여준 사진에 일행이 다 함께 웃었더랬다.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이 청년의 집에 먼저 다녀온 후배는 “선배, 진짜 가 보셔야 해요”라며 ‘엄지 척’을 했다. 그를 부추겨 사진첩에서 찾은 이미지는 즉석밥을 쌓아두는 함. 맞춤한 크기의 아름다운 고가구였는데, 그 안에 즉석밥이 단정하게도 들어 있었다. 내가 본 최고의 즉석밥 보관함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의 집에 직접 갈 일이 생겼다. ‘값이 없는 자유’라는 이름으로 실제 거주하는 집에서 작은 전시를 열고 있다고 했다. 전시품은 본인의 애장품과 소장품, 그리고 몇몇 작가와 함께 만든 작업물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북문에 위치한 주택가의 주말은 한가로웠다. 마을버스가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고, 산책로는 야트막한 높이의 뒷산으로 이어졌다. 두 개 동으로 이뤄진 다세대주택이었는데, 아래쪽 건물에서는 입주민으로 보이는 여성 두 명이 마당에 나와 풀을 뽑고 있었다. 이들은 택시에서 내린 우리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저 윗집이에요” 하고 가르쳐줬다.
노 씨의 집은 소담했다. 주방과 거실에 딸린 작은 창문으로 녹색숲이 일렁였고, 직접 그린 새 그림과 틈날 때마다 모은 공예품이 곳곳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종이죽으로 만든 새, 분재로 키우는 배나무, 산책길에 주워 온 나무껍질…. 손상우 작가와 협업해 레진과 한지로 만든 사각판도 인상적이었는데, 맞은편 집에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걸 막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창문에 필름을 붙이면 간단히 해결될 일이었지만 집으로 들어오는 빛의 명암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단다. 벽걸이 에어컨을 삼베로 덮어놓은 손길이며, 주방 천장 아래로 보름달 같은 한지 조명을 매단 솜씨에서도 내 집을 가꾸는 바지런한 손길과 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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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집을 구하게 된 배경도 자연스레 화두가 됐다. 어느 날 흘러들 듯 이 동네에 온 그는 여기 정서가 마냥 좋아 옆 건물에 세를 구해 살다가 다락방 딸린 이곳이 나왔다는 소리를 듣고 또 한 번 이사를 했다.
햇반마저 고가구에 쌓아두는 선비 같은 청춘의 집은 어떤 모습일까? 가벼운 호기심으로 시작한 나들이였는데 제법 큰 여운이 남았다. 무엇보다 내 공간을 단장하는 능력과 힘.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가꾼 집에 살면 그곳에서부터 나의 모든 가능성이 커지는 것 아닐까. ‘옵션’이 많은 인생이 럭셔리한 인생이라고 한다면 어떤 주거 형태든 기꺼이 ‘내 집’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이의 내공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그런 면에서 공간적 자립은 삶의 여정에서 중요한 단계다. 그렇게 자립으로 이뤄낸 ‘예술적’ 공간에는 필시 ‘값이 없는 자유’가 흘러넘칠 것이다.
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