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파 참모 경질 뒤 ‘新고립주의’ 후퇴 뚜렷 오지랖 과시 속 ‘군사 불개입·외교적 봉합’ 北엔 ‘스몰딜’ 거래, 南엔 ‘분담’ 압박 우려 2주 뒤 새 정부가 당장 마주할 한반도 현실
이철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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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불쑥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공습 중단 사실을 기자들에게 알렸다. 그는 “후티 반군이 ‘제발 더는 우리를 폭격하지 말아 달라. 그러면 당신네 선박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요청했고, 우리는 그 말을 받아들여 즉각 폭격을 중단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이 항복했다”고 했다.
한데 좀 이상했다. 그런 ‘승리’를 트럼프가 그저 몇 마디로 슬쩍 넘길 일이 아닌데, 왠지 군색했다. 트럼프는 생뚱맞게 “2, 3일 뒤 엄청나게 큰 발표를 할 것”이라고도 했는데,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려는 꼼수 아니었나 싶다. 이어진 뉴스들에서 그 이유는 드러났다.
미국과 후티 간 휴전을 중재한 오만 측은 양측이 서로를 공격하지 않기로 했다는 합의 내용을 전했다. 다만 후티 측 약속은 오직 미국만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것이었다. 후티는 “미국을 물리쳤다”며 대대적 선전에 나섰고, ‘이스라엘과 그 연관 선박’에 대한 공격은 계속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실제로 이후 후티의 이스라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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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 공습 중단은 트럼프 2기 행정부 내 사실상 유일한 안보 매파였던 마이크 왈츠 국가안보보좌관이 전격 교체된 직후 이뤄졌다. 왈츠 경질은 J D 밴스 부통령을 필두로 한 마가(MAGA) 진영, 즉 신(新)고립주의 노선의 승리였다. 밴스는 작전 개시 전부터 “우리가 유럽을 돕는 실수를 하고 있다”며 반대했었다. 왈츠가 빠진 국가안보회의(NSC)는 일찌감치 마가 진영으로 전향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지휘 아래 대대적 조직 축소에 들어갔다.
트럼프의 요즘 대외 행보를 보면 군사적 불개입, 외교적 해법 선호가 두드러진다. 트럼프는 지난주 중동 3개국을 순방하면서 오랜 적국이던 시리아에 대한 제재 해제를 선언하고 현상금 1000만 달러가 내걸렸던 지하디스트 출신 시리아 대통령과도 만났다. 트럼프는 그를 “젊고 매력적인 터프가이”라고 했다. 이란에 대해서도 “나는 영원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며 새로운 핵 협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과거 오바마 행정부가 이룬 이란 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던 트럼프다. 핵심 쟁점인 우라늄 농축 문제를 두고 이란은 여전히 ‘고농축 우라늄은 폐기할 수 있지만 민간용 저농도 농축은 양보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합의가 이뤄진다면 그 내용은 파기된 합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취임 100일을 넘긴 트럼프의 거래 본능은 여전하다. 하지만 그 성적이 신통치 않다. 위기를 고조시켜 협상으로 끌어내는 데는 능하지만 대부분 봉합 수준일 뿐 제대로 매듭짓는 것은 거의 없다. 중재인을 자처하지만 보증인, 실행인 역할은 거부하기 때문이라고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평가한다. 막강한 군사력과 달러 패권을 가진 슈퍼파워로서 오지랖 넓게 나서지만 책임지는 일은 회피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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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외교 사전에 민주주의, 인권 같은 단어는 없다. 오직 편의적 실리주의만 있다. 때론 공직과 사익 간 구분조차 없다. ‘미국 우선주의’ 기치 아래 몰가치·불가측·무원칙의 요란한 뒷걸음질을 하고 있다. 앞으로 나가는 듯하지만 실제론 백스텝을 밟는 ‘문워크(moonwalk) 외교’인 셈이다.
이런 트럼프에 현상 타파 세력은 일제히 환호한다. 특히 ‘핵 국가’ 북한 김정은은 군사적 불개입과 스몰딜 타결, 게다가 뒷수습은 동맹에 떠넘기는 트럼프식 거래 셈법을 누구보다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당장 2주 뒤 선출될 새 한국 대통령이 마주할 현실이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