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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미국을 심하게 등쳐먹었다.” “관세 전쟁이든 무역 전쟁이든 다른 어떤 전쟁이든 중국은 끝까지 맞서 싸우겠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서로 죽일 듯 치고받던 미국과 중국이 ‘90일 관세 휴전’에 들어갔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고위급 협상에서 양국이 90일간 상호관세를 115%포인트씩 똑같이 인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매기는 관세는 145%에서 30%로 낮아지고, 중국이 미국산에 물렸던 보복관세 125%는 10%로 인하됐다.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빅딜’이다.
▷양국이 첫 협상부터 극적인 화해 모드에 돌입한 건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치킨게임 같은 관세 전쟁의 역풍으로 미국 금융시장은 달러·주식·채권 가격이 동반 하락하며 패닉에 빠졌고, 1분기 성장률은 ―0.3%로 주저앉았다. 관세 폭탄 우려에 기업들이 수입품을 미리 사재기하면서 미국의 무역 적자는 더 커졌고, 곧 마트 진열대가 텅 빌 것이라는 경고까지 나왔다. 내수·부동산 침체로 고전하는 중국 역시 대미 수출이 막히면서 공장 폐업이 잇따르고 있다.
▷속전속결 ‘휴전 담판’을 두고 양국 정부는 각각 자국의 승리라며 자축하는 분위기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번 합의로 미중 관계가 완전히 리셋됐다”며 “가장 큰 성과는 중국의 시장 개방”이라고 평했다. 제네바 회담에 나섰던 중국 협상팀 3인방 중 한 명인 리청강 상무부 국제무역담판대표는 “중국 속담에 ‘맛있는 밥은 늦게 지어져도 좋다(好飯不怕晩)’는 말이 있다”며 협상 결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중국 관영매체 등도 “중국의 위대한 승리”, “미국의 상호관세 남용에 처음으로 반격한 국가”라는 자평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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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관세 휴전이 영구적 평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관세 인하에 90일이라는 꼬리표가 달린 데다 양국의 인식 차이가 커 후속 협상이 쉽지 않을 거라는 우려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말 시진핑과 통화할 수 있다”고 했는데, 양국 정상이 만나야 실질적인 관세 전쟁 종식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불안한 휴전이긴 해도 한국의 1, 2위 교역국인 중국과 미국의 해빙 무드에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 일이 줄어든 건 다행이지만, 우리 발등에 떨어진 관세 폭탄은 아직 그대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