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헌정사에서 오랫동안 불통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청와대 ‘소통 획기적 강화’ 해법 없는 청와대 복귀는 ‘파멸의 길’ 될 수도
천광암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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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 대통령실 시대가 머지않아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대선 유력 후보들 다수가 용산행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첫 TV 토론에서는 대통령실 재(再)이전 문제가 핵심 이슈 중 하나였다. 이재명 후보는 “용산 대통령실을 잠시 사용하다가 청와대를 보수해 집무실로 사용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수 김동연 후보는 용산에 아예 가지 않겠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서는 홍준표 안철수 후보가 청와대 복귀, 유정복 이철우 후보가 각각 세종과 충남 이전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후보들은 유보적 태도다. 최소한 “용산을 고수하겠다”는 후보는 아직 없다. 세종 이전 시 먼저 정리해야 할 개헌 논란과 후보 지지율 판세 등을 감안하면 청와대 복귀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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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가 끝없이 반복되는 것은 후임자들이 전임자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만 하더라도, 앞서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과 ‘비선정치’를 반면교사로 삼았더라면 김용현과 같은 소수 측근과 모의해 ‘자폭성 계엄’을 하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실패를 자기 일처럼 곱씹어 보지 않으면, 차기 대통령도 비슷한 전철을 밟지 말란 법이 없다.
윤 전 대통령의 ‘탈(脫)청와대’가 실패한 원인은 장소에 있는 것이 아니다.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데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이전을 추진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국민과의 소통, 언론과의 소통이었다. 하지만 ‘공간’에만 사로잡혀 ‘소통’이라는 대통령실 이전의 목적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용산 이전의 전(全) 과정이 ‘불통’ 그 자체였다.
대통령실 이전의 상징 중 하나였던 출근길 문답은 6개월여 만에 없는 일이 됐고, 그 자리에는 기자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이 설치됐다. 정식 기자회견은 건너뛰고 그 공백을 자신의 입맛에 맞는 특정 언론사만 불러서 하는 녹화 대담이나 인터뷰로 채웠다.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과 같은 아부성 발언이 질문을 대신한 결과 ‘여사 리스크’는 걷잡을 수 없게 커졌고 그것은 다시 총선 참패→야당과의 대치 심화→무모한 비상계엄을 거쳐 대통령직 파면에 이르는 일파만파의 후폭풍을 낳았다.
해외의 사례지만,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전 멕시코 대통령의 경우는 윤 전 대통령과 좋은 대비를 보인다. 오브라도르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거의 매일 오전 7시에 생중계 기자회견을 했다. 임기 중 1400번이 넘는 회견을 할 정도로 소통을 열심히 한 그의 지지율은 퇴임 무렵에도 70%에 가까웠다.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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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우리 대선 이야기로 돌아오면, 민주당이든 국민의힘이든 ‘용산이냐 청와대냐 세종이냐’의 갑론을박은 있지만, 용산 이전과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을 안전장치인 ‘소통’을 강화하려는 강한 의지나 실효성 있는 공약은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지금까지 ‘탈청와대’ 공약을 내걸었던 대선 후보는 윤 전 대통령뿐이 아니다. 김대중, 이회창, 문재인 후보도 같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만큼 우리 헌정사에서 청와대는 뿌리 깊은 불통과 권위주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이에 대한 고민과 해답 없이 그냥 청와대로 들어가는 것은 이쪽저쪽 방향만 다를 뿐 ‘용산 흑역사’를 되풀이하는 일이 될 것이다.
천광암 논설주간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