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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영 한식 인문학자
서양 음식의 ‘소스’에 해당하는 우리말이 ‘장’이다. 이 장을 이용해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고 개발한 것이 ‘양념’이다. 이 장과 양념이 만나 새로이 탄생한 것이 김치와 된장, 간장, 고추장이다. 장과 김치는 정성을 들여 담근 다음에 오랜 발효 과정을 거쳐야만 맛있는 음식이 된다. 그 발효 과정은 창조와 개발이 아닌 오랫동안 기다리고 터득한 지혜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다. 장의 발효는 미생물에 의해 콩에서 메주가 되기까지, 그리고 장을 담근 후 아미노산 펩타이드가 만들어지기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이뤄진다. 우리 조상들은 미생물이나 발효라는 과학 지식은 알지 못했지만 어떻게 하면 맛있는 음식이 생기는지에 대해선 대대로 내려오는 지혜를 통해 알았다.
우리 음식의 맛은 장맛에 의해 결정되고, 김치가 맛있으면 밥맛도 좋다. 우리 속담에 ‘그 집의 장맛을 보면 그 집안의 음식맛을 알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프랑스 미식가 장 앙텔름 브리야사바랭이 “그가 무엇을 먹는지 알려주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줄 수 있다”고 말한 것과 맥락이 통한다. 브리야사바랭이 음식으로 인격을 알 수 있다 했지만 우리나라는 장맛으로 그 집안을 알 수 있다 한 것은 관점만 다를 뿐이다. 문화적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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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음식의 뿌리는 자연과 발효다. 아주 오묘한 과정인 발효 과학이 우리 음식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맛있는 발효의 맛은 오래 기다려야 했다. 우리 조상들은 장과 김치를 정성 들여 담그고 때를 기다려 왔다. 마치 어머니가 사냥 나간 지아비가, 길 떠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 것같이. 그리고 지아비와 아들이 돌아오면 함께 맛있게 먹을 것을 꿈꾸며, 정성 들여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만남을 기다렸다. 누구와의 만남을 기다리면서 음식을 만드는가와 누구와 음식을 나누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기다림과 만남, 한식의 인문학이다.
권대영 한식 인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