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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재킷에 하얀 터번을 쓴 남자가 기지개를 켜며 하품하고 있다. 머리는 희끗희끗하고 배는 불룩 나왔다. 18세기 초상화에서는 보기 드문 파격적인 인물 표현이다. 도대체 누구의 초상화이기에 이렇게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된 걸까?
이 인상적인 초상화는 프랑스 화가 조제프 뒤크뢰의 ‘하품하는 자화상’(1783년·사진)이다. 뒤크뢰는 18세기 말 프랑스 궁정의 수석화가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결혼 전 첫 초상화를 그려 남작 작위를 받았고 루이 16세의 마지막 초상화를 그렸다. 권력자들을 실물보다 미화해서 그리는 건 그의 당연한 임무였다.
그는 1780년대부터 자화상도 여러 점 그렸는데 그중 48세에 그린 이 그림이 가장 유명하다. 화가들이 자화상을 그리는 이유는 모델료를 들이지 않고 다양한 기법이나 표현을 연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내면을 기록하거나 화가로서의 모습을 후대에 남기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든지 실물보다 미화하거나 화가로서 진중한 면을 부각해서 그리기 마련이다. 왜냐면 초상화를 의뢰하려는 상류층 고객들에게 작품 샘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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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품은 생리적 현상이다. 생리학에 관심이 많았던 뒤크뢰는 다양한 표정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수단으로 자신을 이용했다. 거울을 보며 놀라거나 웃거나 졸리는 표정을 연습해 화폭에 옮겼다. 이 자화상은 중년의 피로감을 전달하려는 목적으로 제작됐을 터다. 화가의 눈빛은 마치 ‘그동안 일을 너무 많이 했으니 이제는 휴식을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