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열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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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는 2004년 5월 14일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 “대통령은 국민 모두에 대한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고 밝혔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어떻게 지키고 수호해야 하는지 결정례(2004헌나1)를 제시한 것이다.
당시 헌재는 “대통령은 헌법을 수호하고 실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만 아니라, 법을 준수하여 현행법에 반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며 “나아가 입법자의 객관적 의사를 실현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해야 한다”고 결정문에 적시했다. 이 결정례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심판에도 그대로 인용되며 파면 결정의 근거로 쓰였다.
대법원 판례는 그 자체로 법률적 성격을 갖는다. 정부의 정책과 처분은 이와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헌재 결정도 그 자체로 헌법적 기능을 갖는다. 헌재 결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위헌행위다. 대법원과 헌재를 ‘최고사법기구’라고 부르는 이유다. 헌재법은 헌법소원·권한쟁의심판 결정과 관련해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를 기속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각 기관이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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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국내 거주지를 신고하지 않았거나 주민등록이 없는 재외국민은 투표권을 주지 않는 국민투표법 조항에 대해 2014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형법상 낙태죄 조항과 관련해서도 2019년 같은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두 법률을 각각 2015년과 2022년까지 개정하라고 주문했지만 국회는 여전히 개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던 최상목 부총리는 마은혁 헌재 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는 헌재의 권한쟁의심판 결정을 이행하지 않았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마 재판관을 8일에야 임명했다. 헌재 결정이 나온 지 40일 만이다.
한 권한대행은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어떠한 결정이 내려지더라도 우리는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결과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 결정을 40일 만에 이행한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민에게 승복을 요구할 자격을 상실했다. ‘법치와 준법의 상징적 존재’라는 헌법이 부여한 역할도 저버렸다. 정부와 국회도 법치와 준법을 말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되돌아보길 바란다.
유성열 사회부 차장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