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
다 먹은 샐러드 접시를 반납한 뒤 손을 닦고 물을 마셨다. 그런 후에 이 다섯 그루의 식물을 더 자세히 감상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이들을 바로 코앞에서 봤을 때 거의 비명을 지를 뻔했다. 화분이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모조식물로 채워진 것이 아닌가. ‘유기농 재료로 건강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크게 써 붙인 식당이었기에 뒤통수를 맞은 듯했다.
충격은 곧 깊은 분노로 바뀌었다. 다시는 이 식당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샐러드를 먹을 때 상한 아보카도를 발견하고 잠깐 직원을 불러 문제를 제기할까 생각했다. 더군다나 샐러드는 꽤 비쌌다. 하지만 참았다. 속으로 이 정도는 괜찮다고, ‘이토록 추운 겨우내 화분을 저토록 훌륭히 돌봤으니 그냥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나의 마음이 무색해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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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프로젝트를 떠올리면서 지하철로 걸어가는 동안, 왜 그 식당의 식물이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내가 그토록 분노했는지 생각해 봤다. 이전이었다면 잠깐의 짜증에 그쳤을 법한 일일 수도 있었다. 그저 장식용 화분이라고 나 역시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몇 달 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 전시를 관람하면서 관점이 달라졌다. 한국 최초의 여성 조경사 정영선 씨가 50년 넘게 구성해 온 작품들을 조명하는 개인전이었는데, 서울 시내의 푸르른 정체성은 정 씨와 그의 스튜디오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전시를 본 뒤 나는 비로소 한국 정원의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동안 세계적으로 정원에 대해 말할 땐 언제나 유럽식 정원과 일본식 정원이 대표성을 갖고 언급되곤 했다. 그러나 이 전시 이후 나는 한국 정원이 비슷한 수준, 아니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온전히 정 씨의 말 덕분이다. 한국인들에게는 익숙할 수도 있으나 나에게는 완벽히 새로운 개념이었는데, 작가에 따르면 한국인에게 정원은 ‘빌려온 자연’이라는 개념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정원은 자연을 들여오거나 잠시 빌려온 공간이기에 훈련받지 않은 눈에는 많은 정원이 소홀히 다뤄진 것처럼 보이거나 유럽식 혹은 일본식 정원만큼 충분히 화려하거나 대칭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인들은 정원에 개입을 최소화하거나 개입이 거의 없는 듯한 ‘미묘한 개입’을 통해 자연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국립현대미술관 내부의 정원과 제주 서귀포시의 오설록 티 뮤지엄에 조성된 정원을 방문하고서 저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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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솔라노 콜롬비아 출신·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