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남긴 최악 산불] 집-터전 잃은 이재민들 힘든 나날 이재민 대부분 고령층… 건강 우려 보행보조기도 불 타 이동 힘들어 “산불은 人災” 상대적 낮은 지원금… 집 불타도 최대 3600만원 그쳐
임시 대피소 텐트 옆에서 쪽잠 30일 경북 영덕군 영덕국민체육센터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 산불 이재민들이 텐트 옆에서 쪽잠을 청하고 있다. 30일 기준 경북 특별재난지역 5개 시군의 주택 피해는 3308채, 이재민은 3773명으로 조사됐다. 영덕=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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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우리 영감 먼저 가버리고, 인제는 집이고 뭐고 싹 다 타삣다. 먼저 간 영감 사진 하나도 몬 챙기고 나왔다. 한 장도 없어. 싹 다 타버리고 없심더. 집도 없구 영감도 없는 내는 이제 우째 살지 모르겠심더.”
30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하면 고곡리에서 만난 김연희 씨(65)는 울음을 꾹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김 씨의 집은 마을 어귀에 있었다. 불과 나흘 전만 해도 사별한 남편의 추억이 곳곳에 가득했던 그의 집은 27일 밤 마을을 덮친 화마에 잿더미가 됐다. 그날 이 마을에서만 50채의 집이 불탔다. 김 씨의 집이 있던 자리엔 검게 변해버린 벽돌과 기와가 나뒹굴었다. 김 씨는 작년 10월에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과수원을 일구며 살아왔다. 남편과 함께 가꾸던 나무들이었다. 이번 화재로 절반은 다 타버렸고 나머지 절반도 불길이 스쳐 꽃이 필 수 없게 됐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농사에 서툰 김 씨를 위해 남긴 ‘농사 노트’도 불탔다. 남편의 묘도 잿더미가 됐다.
● 터전 잃은 주민들 “언제 복구될지도 깜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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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로 변한 ‘한국의 산토리니’ ‘한국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했던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따개비마을’이 22일부터 이어진 경북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8일이 지난 30일 마을 전체가 검게 탔고 집들도 여기저기 피해를 입었다. 영덕=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취재팀이 이날 경북 의성군, 안동시, 영덕군 등 3곳 대피소에서 만난 이재민들은 차가운 바닥에서 쪽잠을 자고 옷가지 등 생필품이 부족해 불편을 겪고 있었다. 이재민 대부분 고령층이라 건강 악화도 우려됐다. 의성군 단천면 주민 권원수 씨(71)는 “대피소는 소등 이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 드나든다”며 “이재민 대다수가 노인이고, 노인들은 밤새 앓는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화장실에서 겨우 간단한 세수를 할 뿐 샤워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안동시 일직면 우원리 주민 원두리 씨(86)는 원래 걸음이 불편해 주변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가 쓰던 보행보조기는 이번에 불탔다. 원 씨는 “허리도 못 쓰고 다리도 부어서 걷지를 못한다. 이동할 때 구르마(보행보조기)가 있어야 하는데 여기엔 없어서 이동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집 없이 2년씩 지내기도… “생계 자립 지원 필요”
산불 이재민들은 길게는 수개월, 수년을 거처 없이 지내는 경우도 많다. 2022년 3월 4일 경북 울진에서 시작돼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초대형 산불로 집을 잃었던 주민 181가구 가운데 30가구는 지난해 초까지 임시 컨테이너에 살았다. 피해 보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경북도에 따르면 화재·산불 등으로 집이 타버린 경우 받는 주거비 지원금은 최대 3600만 원 수준이다. 홍수는 6600만∼1억2000만 원까지 지원된다. 홍수는 자연재해지만 산불은 인재(人災)라는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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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영덕=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의성=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