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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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 ‘어프렌티스’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멘토’ 로이 콘 변호사로부터 ‘승리의 법칙’을 전수받는 장면이 나온다. ‘악마 변호사’로 악명을 떨치던 콘이 야심에 가득 찬 뉴욕 부동산 업자의 아들 트럼프에게 전한 법칙은 세 가지다. ‘공격, 공격, 또 공격하라’,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고 모두 부인하라’, ‘승리를 주장하고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말라’.
패배 인정 않는 트럼프의 무자비한 관세전쟁
영화적 각색이 가미된 장면이지만 세 가지의 승리 법칙은 트럼프 대통령의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역정을 관통하는 핵심 법칙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때도 위기에 처할 때마다 참모들에게 “나의 콘은 어디에 있나”고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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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관세 정책을 몰아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곧 한발 물러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가 철회하며 오락가락하는 행보에 비춰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그 자체보다는 관세를 협상 카드로 얻어낼 경제적 이익을 더 중시한다는 해석에 따른 기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관세 정책을 설계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에 대한 신념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트럼프 대통령은 1987년 뉴욕타임스 등에 자비로 낸 광고에서 “일본은 수십 년간 미국을 이용했다”며 관세 정책 부활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의 신념은 2000년대 미국의 제조업 붕괴로 이어진 ‘차이나쇼크’를 거치며 거의 종교적 믿음으로 굳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와 재선에 목을 매던 첫 임기 때와도 다르다. 주가 하락은 물론이고 일부 정치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서둘러 ‘미국 우선주의’ 대못을 박겠다는 태도다. 조급하리만치 관세 정책에 목을 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 달 2일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미국이 한국에 관세를 부과하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위반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때부터 미국을 착취하는 대표적인 동맹국으로 한국을 지목해 집중 공격을 펴 왔다. 양국 간 실효 관세가 0% 수준이라는 해명은 부인하면서도 2018년 한미 FTA 개정 협상은 대성공이었다는 모순적 주장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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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다급한 모습이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직무 정지에서 복귀하자마자 “통상전쟁에서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재계엔 ‘민관 원팀’을 통한 공동대응을 당부했다.
총력을 기울여야 할 일이지만 서두르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다.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트럼프의 승리 법칙을 고려하면 트럼프 2기 관세전쟁은 장기전이자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런 맥락에서 미국에 에너지, 조선 협력 등 선물 보따리부터 풀어놓고 오는 방식의 외교는 되돌아봐야 한다. 조급한 마음에 장기적 계획 없이 협상 카드만 소진했다간 더 거세지는 관세 태풍을 맨몸으로 맞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병기 정치부장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