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 자유의 여신상을 보다 보는 구도-세워진 장소 따라… 같은 예술품이라도 의미 달라져 ‘아메리칸드림’ 상징 여신상… 美 기울어진 자유 보여주거나 주상복합-현수막 사이 있을 땐… 노골적 한국 사회 욕망 드러내
영화 ‘혹성탈출’(1968년)에서는 인류 문명을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이 부서진 채 해안가에 놓여 있다. 사진 출처 김영민 교수 제공·IMDb 홈페이지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지구에서 멀리 있는 다른 행성인 줄 알았던 곳이, 다름 아닌 지구였던 것이다. 이 충격적인 결말에서 자유의 여신상은 인류 문명 전체를 상징한다. 원숭이 같은 동물들을 지배하며 자기 위주의 자유를 구가하던 인류는 결국 원숭이에게 구속당하는 부자유한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자만심이 가득했던 인류 문명의 허망한 종말. 망한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세계라는 이 역설적 깨달음. 미래와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 고난의 여정은 결국 자기 처지를 깨닫기 위한 여정이었던 셈이다.
영화 ‘브루탈리스트’(2025년) 포스터에 등장한 기울어진 자유의 여신상. 사진 출처 김영민 교수 제공·IMDb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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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깨달음 속에서 라즐로는 마침내 브루탈리즘(brutalism)이란 건축미학을 구현해 낸다.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시켜서 어둡고 거칠고 육중하고 날것 그대로의 거친 느낌을 주는 건축. 창문이 없어 침묵의 요새처럼 보이는 건물. 라즐로의 첫 작품은 동유럽의 폐쇄적 상상력뿐 아니라 자유로울 듯 결국 자유롭지 않던 미국에서의 체험을 담고 있다. 창문 없이 폐쇄돼 있기에 그 건물은 자유가 아니라 부자유의 여신상처럼 보인다. 동시에 천장을 통해서 들어오는 외줄기 빛으로 인해 부자유 속에 서 있는 구원의 여신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영화에서 브루탈리즘이 유대인 망명자의 정신을 표현하듯 현대 한국의 정신을 표현해 주는 건축이 있지 않을까. 한국에도 아름답고 멋진 건물들이 실로 많다. 유명한 외국 작가에게 의뢰해 탄생한 멋진 건물들이 한국인의 정신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드물게 나타나는 천재적인 한국 작가의 작품이 한국인의 무의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한국인 대부분이 사용해 본 적 있는 예식장이나 모텔 건물이야말로 한국인 다수의 정신을 담고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그 이미지들을 수집해 왔다. 실로 한국인의 상상력은 거침없다. 난데없는 고딕 양식의 예식장이 있질 않나, 이슬람 건축을 연상시키는 돔 형태의 모텔이 있질 않나.
국내 한 비즈니스호텔 꼭대기에 자유의 여신상이 설치돼 있다. 사진 출처 김영민 교수 제공·IMDb 홈페이지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신학철 작가의 작품도, 붉은 현수막도, 그렇다고 불끈 솟은 주상복합 건물도 아닌 바로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해외에 실존하는 미국은 세계를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점점 버리고 있는데, 한국인이 직접 만든 자유의 여신상만큼은 이렇게 비즈니스호텔 옥상에서 한국인을 굽어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여신상이 상징하는 자유란 무엇일까. 예술품의 의미는 모름지기 그것이 위치한 장소와 분리되기 어려운 법. 자유의 여신상이 이민자를 맞는 부두가 아니라 도시의 비즈니스호텔에 서 있다면, 그 자유는 봉인 해제된 욕망을 상징하는 게 아닐까. 난데없이 중국대사관에 난입한 한국형 ‘캡틴 아메리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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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