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타계한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 그는 짧은 머리와 큰 눈망울로 ‘오페라계의 오드리 헵번’으로 불렸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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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 문화전문기자
앤디와 친한 죄수 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그 목소리들은 회색 공간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꿈꾸지 못할 만큼 높고 멀리 날아올랐다. 우리가 갇힌 새장으로 예쁜 새가 날아와 그 철창을 부순 것 같았다. 짧은 순간 동안 쇼생크의 모든 사람은 자유를 느꼈다.”
팀 로빈스(앤디 역)와 모건 프리먼(레드 역)이 출연한 1994년 영화 ‘쇼생크 탈출’의 내용 일부다. 영화에서 교도소 안에 울려 퍼진 두 여인의 노래는 모차르트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3막에 나오는 이중창 ‘산들바람이 불고(Sull’aria)’다. 수산나 역 소프라노 에디트 마티스, 백작 부인 역 소프라노 군둘라 야노비츠가 노래한 1968년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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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중 먼저 나의 우상이 된 사람은 야노비츠였다. 베버 오페라 ‘마탄의 사수’와 오르프의 칸타타 ‘카르미나 부라나’ 음반을 통해 접한 청초한 목소리는 황홀할 정도였다. 마티스의 노래에 빠져든 것은 대학 시절 학생회관 음악감상실 부스에 있던 슈만 ‘여인의 사랑과 생애’ 음반 덕이었다. 그 목소리는 샘물처럼 맑았고, 차분하면서도 이지적인 해석이 이 가곡집 속 감정의 굴곡을 호소력 있게 그려 나갔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 소프라노인 그 에디트 마티스를 만난 것은 2010년의 일이었다. 이해 ‘LG와 함께하는 제6회 서울 국제음악콩쿠르’에는 성악 팬들이라면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전설적인 성악가가 세 사람이나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탈리아 바리톤인 레나토 브루손과 이탈리아 메조소프라노 피오렌차 코소토, 그리고 마티스였다. 브루손이 코소토보다 한 살 아래, 마티스는 브루손보다 두 살 아래였다.
두 이탈리아인은 적극적으로 여러 얘기를 쏟아냈지만 마티스는 대체로 온화한 미소를 지은 채 두 사람의 얘기에 공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스트리아 빈 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그에게 한국 학생들에 대한 인상을 묻자 ‘한국 학생들은 유학 생활 초반에 외국어 발음을 익히는 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야 하지만 이 과정을 지나면 언제든지 최고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성악가로 살면서 겪은 기억나는 일을 묻자 브루손은 모나코에서 스태프로부터 욕을 들은 뒤 화가 나서 그를 경찰서에 끌고 갔고, 공연 날 모나코 군주인 레니에 3세 공과 부인 그레이스 켈리의 초대를 받고 사과를 들은 일을 떠올렸다. 코소토는 나폴리에서 오페라에 출연했을 때 금장식 대신 목에 건 초콜릿이 녹아 옷을 더럽힌 일을 웃음 섞어 회상했다. 마티스는 ‘그다지 떠오르는 일이 없는데…’라며 예의 미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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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위대한 가수들의 시대가 저문다’며 비감에 젖을 생각은 없다. 작곡가 말러와 산책하던 브람스가 작곡계의 새 조류에 대해 불평하자 젊은 말러는 ‘선생님, 저기 냇물에 마지막 물결이 내려오네요’라는 말로 도발했다. 마지막 물결이 어디 있겠는가. 의욕이 충만하고 잘 준비된 새로운 세대가 계속해서 뒤를 이을 것이다. 브루손과 코소토가 멋진 만년을 보내기 바란다. 마티스의 명복을 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