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과 속’ 모습 달랐던 2025년 中 ‘춘제’ ‘춘제’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당국 “세계가 ‘중국 설’ 인정” 자찬… 홍등과 조명 장식으로 명절 분위기 보조금-쿠폰 소비 진작해도… 경제 지표는 반등 기미 안 보여
지난달 29일 중국 베이징 류리창(琉璃廠) 거리는 춘제를 즐기러 나온 인파로 붐볐다. 이곳에선 춘제 기간 동안 임시 시장 형태의 ‘묘회(廟會)’가 열린다. 또 거리 곳곳에는 화려한 홍등 장식이 설치돼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 ‘음력 설’ 아닌 ‘중국 설’ 강조
이번 춘제 기간에는 중국 전역에 홍등 등 빨간색으로 치장된 조형물이 대거 설치됐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베이징에서만 약 26만 개의 홍등과 장식, 2969개의 조명 시설이 매일 밤 불을 켰다. 지난달 29∼31일에는 춘제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불꽃놀이도 전국 곳곳에서 개최됐다.
춘제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은 중국 관영 매체가 단골로 보도하는 소식이다. 올해는 특히 그 강도가 한층 강화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유네스코에서 춘제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한 춘제의 정식 영어 명칭은 ‘스프링 페스티벌(Spring Festival)’. 그러나 중국에서는 ‘중국 설(Chinese New Year)’이란 표현을 쓴다. 한국 베트남 등 동양 문화권의 다른 나라에서 쓰는 ‘음력설(Lunar New Year)’과 구분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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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국, 소비 진작 총력
당국이 춘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또 다른 이유는 소비 진작이다. 중국은 수년째 부동산 경기 침체와 내수 부진에 허덕이고 있다.
당국이 지난해 내내 여러 경기 부양책을 발표했지만 경제지표에서는 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0.1%로 같은 해 11월(0.2%)보다 더 낮아졌다. 경제매체 차이신(財新)이 자체 집계한 올 1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1로, 한 달 전 50.5보다 하락했다. 물가 하락 속 경기 침체를 뜻하는 ‘디플레이션’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은 물론 캐나다 멕시코 유럽연합(EU) 등에 전방위 관세 부과 의지를 밝히면서 그간 경제를 지탱해 온 수출에도 빨간불이 커졌다. 올해 주요 과제로 ‘내수 진작’을 꼽은 중국 정부로선 춘제 연휴가 소비 살리기의 첫 시험대나 다름없는 셈이다.
당국은 춘제를 20여 일 앞둔 지난달 8일 ‘이구환신’(以舊換新·가전제품 자동차 등을 바꿀 때 보조금 지원) 정책을 발표했다. 스마트폰, 태블릿PC를 포함한 6000위안(약 120만 원) 이하의 전자제품을 살 때 최고 500위안(약 10만 원)의 지원금을 주는 것이다. 지원금 제공 대상에 식기세척기·전기밥솥·전자레인지·정수기 등 4개 품목도 추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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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도 소비를 늘리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분야다. 관영 매체들은 춘제 연휴 여행지로 각광받는 주요 지방도시를 방문하라며 적극 홍보했다.
● 명절 풍속도 변화
다만 여전히 중국에선 소비 심리가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관영 매체의 보도와 달리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을 한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적고, 지급받은 쿠폰으로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 감상이 늘어난 정도에 그쳤다는 의미다. 로이터통신은 “소비 지출을 늘리려는 공무원들의 노력에도 중국 젊은이들은 돈을 아끼고 더 많이 저축하는 노하우를 공유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2일 보도했다.
길거리 상점에서 손오공 분장을 한 상인이 토끼 모양의 솜사탕을 만들고 있다. 베이징=김철중 특파원 tnf@donga.com
경기 호황기에 많은 중국인들은 춘제를 홍콩에서 즐겼다. 그러나 올해 춘제 기간 홍콩을 찾은 본토 관광객의 체류 기간, 1박당 평균 지출액 등이 모두 감소했다고 홍콩 사우스모닝차이나포스트(SCMP)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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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서 일대의 주요 은행은 이번 연휴에 20위안 신권을 교환해 주는 특별 창구도 열었다.
“다른 명절은 몰라도 춘제 때는 고향에 가야 한다”고 여기는 중국인도 적어지고 있다. 과거 춘제에는 대도시에서 배달원이나 공유차량(택시) 기사를 하는 ‘농민공(도시에서 일하는 농촌 출신 노동자)’들이 대거 고향을 찾아 연휴 동안 배달을 시키는 일도, 택시를 잡는 일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춘제 연휴 중에는 평소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는 게 현지인들의 반응이다. 한 배달원은 “연휴 때는 기차표가 비싸고, 또 연휴 때 일하면 배달료를 추가로 받을 수 있어서 연휴 일주일 전에 고향에 다녀왔다”고 말했다. 일부 식품 배달 플랫폼 기업은 도시에 남은 배달원들을 위해 명절 파티 등도 개최했다.
춘제 귀성 행렬이 빨라지고 주요 상점들의 휴업 기간 또한 대폭 짧아졌다. 또 다른 경제 매체 디이차이징(第一財經)에 따르면 예년에는 춘제 연휴 마지막 이틀에 귀성 인파가 몰렸는데, 올해는 경제난 속에 서둘러 도시로 돌아가는 농민공들이 많아지면서 연휴가 끝나기 4일 전부터 고속도로와 국도가 막했다. 과거에는 춘제 기간 최대 2주 정도 문을 닫던 상점과 식당도 많았지만 올해는 연휴 시작 며칠 만에 영업을 재개하는 곳이 많았다고 덧붙였다.
김철중 베이징 특파원 tnf@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