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기소, 재판 등 사법 작용의 대상이 되는 일’. ‘사건’의 사전적 정의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지각하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사건은 벌어지고 있습니다. 동아일보 법조팀 기자들이 전국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중,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건 이야기들에 대해 더 자세하게 풀어보겠습니다. 여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다단계와 유사수신(類似受信)의 무서움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가족을 겨눌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고,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이끌려 들어선 불법 피라미드의 입구 반대편은 어쩌면 이번 생의 낭떠러지가 될지 모른다. 이들의 범죄망을 피해 갈 방법은 없을까. 전국의 다단계와 유사수신 범죄가 몰리는 ‘민생경제’ 전담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정현) 검사들을 만나 조언을 구했다.●주변에 권하는 순간 유사수신 공범
유사수신이란 허가받지 않고 등록되지 않은 개인 또는 업체가 불특정 다수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누군가로부터 “원금 보장”, “O개월 동안 OO%의 수익 보장” 등 혹할 만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당신은 이미 타깃선상에 놓였다. 투자 초반 ‘미끼’ 수익을 얻고, 주변에 권하기 시작하면 당신은 이제 공범이다. 고아라 부부장검사는 “부모, 자식, 친인척이 모두 공범으로 입건되는 경우도 있다”며 “가족에게 권유하면 유사수신 공범으로 입건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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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을 검토하고 있는 형사4부 검사들. 좌측 상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아라 부부장검사, 조미경 검사, 안미현 검사, 김현빈 검사, 박혜진 검사, 유광선 검사.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이런 끔찍한 결말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형사4부 수석검사인 조미경 검사는 “일확천금을 노리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 검사는 “은행 적금 연이자율이 3, 4%인데 월 18% 수익이라고 하면 투자자들도 사기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며 “고수익 상품들은 실체가 있는지 잘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형사4부 검사들이 건네는 범죄예방 Tip〉
1. ‘원금보장’에 속지 않기
2. 높은 수익률을 믿지 않기
3.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인가된 투자 업체인지 확인하기
4. 금융정보분석원 홈페이지에서 가상자산업자 신고현황 확인하기
●신속 수사로 추가 피해 막은 휴스템코리아 사건
휴스템코리아 사건은 형사4부가 최근 재판에 넘긴 사건 중 가장 피해 규모가 큰 사건이다. 수사팀이 특정한 범죄수익 규모는 3조3000억 원대에 달한다. 현재까지 구속 기소한 피고인은 7명으로, 약 70명의 피의자에 대한 수사도 한창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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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광선 검사는 “워낙 돌려막기도 잘 되는 상황이어서 당시 대표 이모 씨에 대한 강제수사에 착수할지 말지를 고민했다”며 “회사 측에서도 ‘멀쩡한 회사를 괜히 건드려서 수많은 피해자를 발생시키는 것 아니냐’고 주장했지만, 기록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명백한 범죄로 볼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 검사는 “1심 법원도 판결문에서 ‘대표가 구속되면서 추가 피해가 더 이상 없었다’는 취지로 판시해 보람이 있었다”고 했다.
기록으로 가득 찬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조사실. 책상 위와 캐비닛을 가득 채운 130여 권의 기록들은 모두 한 사건 관련 수사기록이다. 페이지수로는 6만5000페이지 이상 된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형사4부는 휴스템코리아 외에도 4000억 원대 유사수신 사건인 아도인터내셔널 사건과 관련해 12명을 구속 기소하는 등 총 20명을 재판에 넘기고, 100명에 대한 추가 수사도 진행하고 있다. 5000억 원대 투자금을 편취한 기획부동산 사건인 케이삼흥 사건에서도 3명을 구속 기소하고, 19명에 대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다. 형사4부는 ‘코인 스테이킹(예치)’ 사기로 5000여 억 원을 가로챈 와콘 사건과 관련해서도 약 40명을 수사하고 있다. 유사수신 사건의 특성상 피의자와 피해자 모두 더 늘어날 수 있다.
●형사4부 아닌 형사사(死)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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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을 검토하고 있는 정현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 부장검사. 송유근 기자 big@donga.com
주요 사건 처리가 많은 연말은 더 바쁘다. 박혜진 검사는 지난 연말 주말에도, 크리스마스에도 검사실로 나와 기록들을 살폈다. 박 검사가 연말연초 주말에 출근을 하지 못한 날은 5일 서울에 폭설이 내렸을 때가 유일했다. 박 검사는 “아직 미혼이라 주말에 일하는 것도 괜찮다”고 했다.
형사4부의 막내이자 초임 검사인 김현빈 검사도 주말 근무에 익숙해지고 있다. 경찰 출신인 김 검사는 경찰에서도 유사수신 등을 수사하는 경제범죄수사팀에서 근무했다. 김 검사는 “검사가 돼서도 이런 피해 큰 범죄를 근절하는 데 좀 역할을 담당하고 싶었는데 부서가 마침 적절하게 배치된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극악의 업무강도에 검사들 사이에선 형사4부가 형사사(死)부로 불리기도 한다. 검사도, 검찰 수사관도 지원하지 않는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다. 외부에서 가장 응원받는 부서가 검찰 내부에선 격무로 인해 비인기 부서가 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인근에는 사시사철 형사4부를 응원하는 사기 피해 근절 관련 단체들의 현수막과 피켓이 늘어서 있다.
정현 부장검사는 “유사수신 사건의 경우 초기 대응이 굉장히 중요하다”며 “피해자 수도 많고 민생을 침해하는 범죄인 만큼 수사인력도 보강되고, 검사들이 보람있게 일할 수 있는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허동준 기자 hungry@donga.com
송유근 기자 bi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