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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바닷가에서 회중시계들이 액체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있다. 마치 꿈속에서나 가능한 비현실적인 이미지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기억의 지속’(1931년·사진)은 살바도르 달리가 27세 때 그렸다. 그는 왜 흘러내리는 시계를 그렸을까? 젊은 스페인 화가는 이 그림에 어떤 의미를 담고 싶었던 걸까?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태어난 달리는 1920년대 말 파리의 초현실주의 그룹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초현실주의 화가로 활동했다. 이 그림은 8월의 한여름 날 짧은 낮잠에서 깨어난 후 단시간에 그렸다고 전해진다. 흘러내리는 시계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영향을 받아 시간의 상대적 개념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달리는 강렬한 햇볕에 치즈가 녹아내리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화면 가운데 드러누운 괴물 같은 생물체는 화가의 자화상으로, 긴 속눈썹이 달린 눈을 감고 잠들어 있다. 꿈에서 본 장면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멀리 보이는 울퉁불퉁한 바위산은 그의 고향 카탈루냐의 풍경이고, 왼쪽 하단의 주황색 시계 위를 기어 다니는 개미들은 부패와 퇴행을 암시한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시계는 수면 중에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지만, 시간을 되돌리고 싶거나 좋은 기억을 지속하고픈 화가의 욕망을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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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싶을 때가 있다. 큰 실수를 저질렀거나 감당하기 버거운 비극을 겪을 때 그런 생각이 더 간절해지기 마련이다. 말년에 아내마저 잃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 않았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