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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평인 칼럼]영수회담이 협치냐

입력 | 2024-04-30 23:21:00

막연한 협치 타령은 이제 그만
협치는 대통령 거부권 둘러싼 타협
사안별이 아니라 패키지로 해야 하고
각료 자리 나누는 것까지 고려해야



송평인 논설위원


야당 대표가 전 국민 25만 원 지원 방안과 각종 특검법을 들고 와 대통령에게 ‘우리가 총선에서 이겼으니 받아라’ 해서 받을 수도 없지만 받는다고 협치도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에는 2개의 민의(民意)가 존재한다. 대통령을 선출한 민의와 국회를 선출한 민의다. 두 민의가 시간차를 갖고 존재하면서 같을 때는 서로를 강화하고 다를 때는 서로를 견제한다. 협치는 시간적으로 가까운 민의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2022년 대선 직후 기존의 여소야대 국회가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했던가. 마찬가지로 4·10총선으로 새로 구성된 여소야대 국회가 하자는 대로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파리 특파원을 할 때 독일 통일의 주역 중 한 명으로 당시 재무장관을 하고 있는 볼프강 쇼이블레와 인터뷰를 약속한 적이 있다. 약속한 날 며칠 전에 인터뷰가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장관이 연정 협상에 들어가게 돼 시간을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독일은 가령 총선에서 기민당(CDU)이 다수당이 됐으나 과반에 못 미쳐 사민당(SPD)과 연정 협상을 한다면 임기 내 추진할 주요 정책 전반에 대한 합의를 본 뒤 연정을 발표한다. 합의를 보지 못하면 당을 바꾸어 합의가 되는 당이 나올 때까지 협상을 거듭한다. 그 기간이 길게는 몇 달씩 걸리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독일 같은 의원내각제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사안별로 그때그때마다 타협을 보려면 정치적 피로도가 커질 뿐 아니라 어느 사안에서 실패할 경우 다음 사안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협치가 파탄 날 수 있다. 그래서 협치를 한다면 사안별 합의가 아니라 여야가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2027년까지 3년간 추진하고자 하는 주요 정책을 다 내놓고 무엇을 어떻게 주고받을지 패키지로 묶어 협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협치가 예측 가능하고 지속 가능해진다.

물론 협상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을 하자’고는 할 수 있어도 ‘어떻게 할지’는 결정하기 어려운 정책이 많다. 그래서 큰 틀만 합의하고 여야 인사에게 장관 자리를 나눠줘 구체적인 방법은 그 틀 내에서 장관에게 맡기는 것도 병행할 수 있는 길이다. 국방이나 경제장관은 여당이 맡고 외교나 보건복지장관은 야당이 맡는 식이다. 협치에서는 여야의 정치적 책임이 불분명해지기 쉬운데 이렇게 하면 책임을 분명히 나눌 수 있다.

다만 총리 자리를 야당에 내주는 건 불가하다. 그럴 경우 대통령은 독자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우선 장관 임명에 제동이 걸린다. 장관 임명에는 총리의 제청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책도 뜻대로 펼 수 없다. 국가의 중요한 결정은 거의 모두 총리가 주재하는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총리와 충돌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여소야대 국회가 새 총리의 임명을 동의해 주지 않으면 총리 궐위 상태가 이어져 국정이 마비될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도 남미형 국가로 퇴행하고 있다. 대통령은 여소야대 상황에서 늘 탄핵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종필이 이끄는 비중 있는 제3당이 있어서 사실상의 연정으로 탄핵당할 가능성에서 벗어났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를 당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까지 당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은 공공연하게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과거에는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우리나라 탄핵 제도의 큰 문제는 부통령이 없기 때문에 탄핵까지 가지 않더라도 탄핵소추만으로 권력 공백이 발생한다는 데 있다. 채 상병 사건으로 대통령이 탄핵당할 일은 없으리라고 보지만 국회에서 탄핵소추의 엄격성이 무너지고 헌법재판소도 제동을 걸지 않아 야당이 탄핵소추의 문턱까지 밀어붙이는 건 얼마든지 가능하다.

윤 대통령은 각료 자리의 절반이라도 내줄 각오로 협치를 시도하는 게 좋다. 다만 바로 그 협치를 위해서라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법률안 거부권이다. 협치란 장식어를 다 빼면 대통령이 야당이 추진하는 법안 중 합의된 일부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대가로 정부의 법안 중 합의된 일부에 대한 국회 통과를 보장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 야당이 굳이 대통령과 협치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범야권 의석이 200석에는 못 미친다는 총선 결과가 중요하다. 국민의힘 당선인 중 일부가 흐리멍덩해서 이런 사실을 망각할 때 나라는 다시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