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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청게, 어디서 왔을까[김창일의 갯마을 탐구]〈112〉

입력 | 2024-04-30 22:51:00


항구에서 홀로 그물 손질하는 노인의 손놀림은 빠르고 로봇처럼 정확했다. 무슨 물고기 잡는 그물이냐며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마을에서 최고령 어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82세의 김 노인은 말동무를 만난 반가움 때문인지 계절별로 잡히는 물고기에 대해 한참을 설명했다. “가덕도는 겨울 대구, 봄 숭어, 가을 전어가 유명한데 예전만 못해요. 대신에 거들떠보지도 않던 물고기가 비싸게 팔려서 밥은 먹고삽니다. 고랑치(등가시치), 똥게(톱날꽃게)는 팔리지 않아서 찬거리로 사용했는데 요즘은 다른 데로 갈 것도 없어요. 여기서 다 소비해요. 가덕도까지 고랑치 먹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똥게, 갈미조개(개량조개)는 녹산과 명지가 유명합니다.” 노인이 말한 가덕도, 녹산, 명지는 낙동강 하구의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역에 위치해 사계절 다양한 어종이 잡히는 지역이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그물 손질하던 노인을 만난 2020년은 가덕도에 장기간 머물며 어업 조사를 할 때였다. 고랑치와 갈미조개는 자주 먹었으나, 똥게는 접할 기회가 없었다. 노인과 헤어진 후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곧장 명지항으로 향했다. 수산시장과 횟집 수족관을 샅샅이 살폈으나, 보이지 않았다. 상인에게 물었더니 7월에서 10월까지 잡히는 시기에만 먹을 수 있단다. 실망하며 선창으로 나갔다가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는 어민을 만났다. 일손을 멈추고 담배 피우는 틈을 타서 말을 건넸다. 4월부터 6월까지는 고랑치를 잡고, 7월부터는 똥게를 잡는단다. ‘청게’를 ‘똥게’라 부르는 이유를 물었더니 “진흙 바닥이나 갈대밭의 흙탕물에 살아서 예전에는 다들 똥게라고 했어요. 신호대교 위쪽에서부터 녹산대교 아래쪽까지 잘 잡힙니다”라고 말했다. 하굿둑이 건설되기 전에는 아이들이 물놀이하다 똥게에 물려서 발가락이 잘리는 일도 있었단다. 자신도 물려서 병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집게발 무는 힘이 다른 게와는 차원이 다르다면서 손가락을 내밀며 흉터를 보여줬다.

우리 바다에는 꽃게, 민꽃게, 깨다시꽃게, 점박이꽃게, 두점박이민꽃게 등 다양한 꽃게가 있으나, 유독 청게는 서식지가 낙동강 하구에 한정돼 있다. 섬진강 하구나 제주도 등지에서 간혹 발견되지만, 상업성 있는 규모로 잡히는 곳은 낙동강 하구 연안이 유일하다. 부산의 특화 품종으로 육성하면서 청게 어획에 나서는 어민이 늘었다. 청게 종묘 생산에 성공한 2010년 이후 매년 방류 사업을 진행해 개체 수가 증가하고 있으나, 식도락가들이 찾던 별미가 점차 알려지면서 수요를 충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청게의 표준명은 톱날꽃게인데 낙동강 청게가 토착종인지 외래종인지에 관한 설이 분분하다. 동남아에서 맹그로브크랩 혹은 머드크랩이라고 부르는 톱날꽃게와 낙동강 청게는 색깔과 집게발 모양 등에서 미세하게 다르다. 일각에서는 1960∼70년대에 동남아시아로부터 목재를 수입하던 선박 평형수를 통해 톱날꽃게가 유입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러한 추측이 방송을 통해 소개되면서 마치 정설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 해류를 따라 이동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외래종이라 단정 지을 근거는 없다. 일제강점기에 거제도에서 톱날꽃게 미성숙 개체가 채집돼 발표된 적이 있다. 따라서 오래전 낙동강 하구에 정착했을 가능성도 열려 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