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가속화로 환경 예측 어려워 의도된 계획으로는 경영 한계 플랜형 아닌 플롯형 전략으로 장기 비전에 집중해 성과 거둬야
● 플랜이 아닌 플롯에 집중하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원리로 플롯(Plot)을 내세웠다. 플롯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란 쉽지 않지만 단어의 어원에서 그 뉘앙스를 짐작할 수 있다. 플롯의 어원에는 비밀 계획(secret plan)이란 의미가 포함돼 있다. 비밀 계획이란 공개된 계획과 달리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에서 반전의 충격을 주기 위해 독자와 관객에게 클라이맥스까지 진실을 숨기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를 속이려면 진실을 감추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진실보다 더 그럴듯한 거짓을 내세워야 한다. 이때 갑자기 반전이 일어나고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상황이 전개된다.
머스크의 사업 전개에는 이런 플롯이 자주 보인다. 2022년 공개된 테슬라의 옵티머스라는 휴머노이드는 서툰 걸음과 빈약한 기능으로 시장에 실망감을 안겼다. 영화에서 보던 휴머노이드에 비하면 그야말로 걸음마 단계처럼 보였다. 그러나 얼마 후 보행 동작과는 무관한, 손을 활용하는 단순 버전의 로봇이 테슬라의 자동차 공장 기가팩토리에 설치되면서 조립 생산성과 품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이 역시 머스크의 비밀 계획, 즉 플롯이었던 셈이다.
바둑의 격언에 ‘성동격서(聲東擊西)’라는 말이 있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 관심을 유도한 후 방치된 서쪽을 공격한다는 뜻이다. 화성으로 관심을 유도한 후 지구 저궤도를 장악하고, 휴머노이드에 집중하게 한 후 기가팩토리 건설에 박차를 가하는 머스크의 전략과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이런 머스크의 행보는 사내외에 비전 선포식을 거행한 후 분기별, 연도별로 달성 상황을 이사회에 보고하는 공개 계획이 아닌 은폐된 노림수, 비밀 계획으로서의 경영 전략을 잘 보여준다.
● 단기 성과 지표에 동요는 금물
계획은 단기, 중기별 상세 스케줄과 과정, 목표가 있다. 하지만 플롯은 주인공조차 예상 못 한 스토리로 계획된 반전은 반전이 아니다. 결국 기다림이 필요하고 대부분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일본의 괴짜 편의점 돈키호테는 1980년 만들어진 회사로 이미 그 업력이 반세기에 달한다. 압축 진열, 심야 영업, 보물찾기 등 독특한 영업 방식은 초기 생존을 위한 역사적 산물로 독자적인 철학과 경험이 장기간 숙성된 결과다. 이를 모방한 신세계의 삐에로쇼핑은 2018년 사업을 시작했으나 만 3년이 채 안 돼 모두 문을 닫았다. 돈키호테의 몇몇 외적 요소를 모방한 출발도 조급했지만 중단은 더욱 성급했다. 실패라고 단정짓기엔 너무 이른 결정으로 새로운 시도에 대한 트라우마만을 남겼다. 학습 효과를 거의 기대할 수 없는 졸속 결정이었던 것이다.
김은환 전 삼성경제연구소 경영전략실장 serikeh@gmail.com
정리=최호진 기자 ho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