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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준 칼럼]‘친미냐 친중이냐’ 넘어 ‘한국에 최선이 될 전략은 뭐냐’

입력 | 2024-04-26 23:45:00

日, 미중갈등 속 中의존 줄이며 ‘美우방’ 견지
한편으로는 기업가 대거 방중, 경제협력 노력
한국도 기업들 실리 찾도록 정부가 역할 해야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10여 년 전에 크게 화나는 일이 있었다. 화를 다스리기 위해 상담실도 찾아가고 심리학 책도 읽어보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관련 동영상도 뒤져 보았다. 그런 노력 끝에 깨달은 것이 있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주는 공통된 조언, “나의 주인은 나”라는 것이다.

배우자의 친족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했을 때, 폭압적인 상사에게 시달릴 때, 우리는 분노와 무력감 등 온갖 부정적 감정에 시달리게 된다. 그때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나 상황이 아니라 ‘나’에게 집중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시어머니가 불쑥 던지는 한마디, 상사 얼굴에 스치는 찰나의 표정 변화, 어쩌면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그런 사소한 것에도 내 마음은 요동치게 된다. 그러면 내 마음의 주인은 이미 내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이 된다. 그가 나를 조종하는 것이다. 나는 내 마음에서 주인의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 내 사고의 중심은 “그가 뭘 어떻게 했는지”가 아니라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힘든 상황이 일거에 타개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주인은 나”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 상황을 타개하는 첫걸음이다. 그 첫걸음을 떼어야 내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가 눈에 보이고 나를 위한 가장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나는 그 조언이 국가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본다. 대외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토론의 중심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리한 요구를 쏟아냈을 때, 중국이 사드에 대한 보복으로 우리 기업에 손해를 끼쳤을 때, 일본 정치가들이 대거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했을 때, 북한이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을 때,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주인으로 대한민국을 위한 현명한 선택을 위해 얼마나 고민했던가? 친미냐 친중이냐, 토착 왜구냐 빨갱이냐를 두고 싸웠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중국이나 일본이 던지는 몇 마디, 어떨 때는 그 나라에서 별 존재감도 없는 인물이나 언론이 뱉어낸 말로 한국 사회가 요동치기도 했다. 대한민국의 주인 자리를 남에게 내어주는 꼴이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려면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로 시선의 중심을 대한민국에 돌려야 한다.

11일 미국은 일본, 필리핀과의 더욱 강화된 군사협력 합의를 발표했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미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만들려 한다고 강력히 비난하면서도 구체적 행동으로 반감을 표시하는 것은 자제했다. 한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고 싶어 하지 않는 눈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중요 물자의 공급망에서 중국의 역할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은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마존 등 세계적 기업이 일본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은 그들과 벌이는 사업에 충당할 인력이 부족하다. 이 역시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의 일본 진출이 활발한 것은 일본에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이 중요 시장인 한국 기업은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올 1월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가 200여 명이 중국을 방문해 고위급 인사들과 회담을 가졌다. 2월에는 회담 결과를 전달하기 위해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예방했다. 전반적으로는 공급망에서 중국의 비중을 줄이면서도, 필요한 분야에서는 미일 동맹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중국 기업과 협업하기를 원하는 모양새다.

일본은 늘 ‘민주주의와 법의 지배’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그들이 구미의 우방이라는 입장을 흔들림 없이 견지한다. 그러면서도 그 슬로건 뒤에 숨어서 중국에 대한 직접적 도발은 자제한다. 그리고 가능한 범위에서 경제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실리를 취하기에는 친미와 친중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것보다 나은 전략이 아닐까 싶다.

한국 기업은 한국 정치가들에게 유럽과 일본 기업이 미국과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은 한국 기업도 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국 기업을 지키는 일이 그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토착 왜구와 빨갱이 논쟁에 빠지는 것은 대한민국의 주인 되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대한민국을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은 무엇인가를 두고 토론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는 길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