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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직 소방관 부모들의 치유여행… “나보다 더 아픈 가슴도 많네요”

입력 | 2024-04-22 03:00:00

부모 15명, 日로 ‘눈부신 외출’
소방청 “유족들 모여 서로 위로”
체계적 지원위한 연구용역 착수



19일 오전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의 다케오 신사에서 순직 소방관들의 부모님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소방청이 마련한 ‘마음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부모님들은 2박 3일간 일본을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아픔을 나눴다. 다케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


“내년이면 아들이 떠난 지 벌써 20년인데 단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예. 그래도 여기 오니 저 나무처럼 굳건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예.”

19일 일본 사가현 다케오시(市)의 다케오 신사. 2005년 아들 김성훈 소방교를 잃은 어머니 홍두리 씨(74)가 3000년의 세월을 이겨낸 녹나무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 소방교는 경북 칠곡군 단란주점 화재 사고에서 사람을 구조하다가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소방관 임용 1년을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에 홍 씨 등 15명의 소방관 부모님이 모였다. 소방청과 티웨이항공이 주최하고 소방가족희망나눔이 후원한 순직 소방공무원 부모님 마음치유 여행, ‘눈부신 외출’에 동참하기 위해서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이들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향했다.

1997년 11월 경북 성주군 식품제조업체에서 감전으로 쓰러진 인부 4명을 구하려다가 순직한 김경오 소방교, 2021년 6월 울산 중구 성남동 상가 화재 진압 중 순직한 노명래 소방교의 부모 등이 함께였다. 떠나보낸 시기는 달라도, 하루도 자식을 잊은 적이 없다는 점은 같았다.

소방청과 티웨이항공은 유가족들이 함께 여행하면서 서로 소통하고 마음을 치유하도록 이번 여행을 마련했다. 소방청 관계자는 “순직자에게 배우자나 자녀가 있으면 부모님은 우선 지원 순위에서 밀리는 경우가 많아 마련하게 됐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순직 제복공무원 유가족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가 치유캠프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구조 현장에서 복귀 중 헬기가 추락해 아들(고 안병국 소방위)을 잃은 최정숙 씨(74)는 “사고 전날 밤 ‘엄마, 나 광주 왔어. 내일 갈게’ 하면서 군복 입은 사진을 보내줬는데, 그 사진만 보면 지금도 아들이 곧 돌아올 것 같다”라며 울음을 삼켰다. 그런 최 씨를 지켜보던 고 김기범 소방교의 아버지 김경수 씨(82)는 “악착같이 힘내서 열심히 삽시다”라고 위로를 건넸다. 김 씨는 26년 전 강가에서 수색 활동을 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숨진 아들의 이름으로 장학금 5억 원을 지난달 소방청에 기탁했다.

같은 아픔을 공유한다는 유대감은 이들이 서로를 ‘가족’으로 느끼게 했다. 2020년 7월 아들(고 김국환 소방장)을 잃은 김도근 씨(70)는 “나만 아픈 줄 알았는데 여기 오니 나보다 더 아픈 가슴도 많다”라며 “자식들이 이어준 인연이니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계속 연락하며 지낼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소방서는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부모들이었지만, 버스가 사가현의 한 소방서 앞을 지나가자 일제히 고개를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이번 여행은 소방청 예산이 아닌 티웨이항공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정부가 유가족을 직접 지원하려면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방청은 앞으로 유가족을 지원할 법적 근거를 갖추기로 하고, 다음 달부터 연구용역을 진행한다. 소방청 관계자는 “그동안 유가족 지원 사업은 비영리 법인 등 민간 영역이 진행해왔다”며 “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예산을 확보해 유가족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케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