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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세대 초월한 글벗… 이 우정, 한 편의 詩와 같아라

입력 | 2024-04-06 01:40:00

나태주 시인과 팬 김예원 작가… 50년 차이에도 “우리는 친구”
김 작가, 5년 전에 영시 번역 선물… 나 시인은 청년 위로하는 시 화답
삶과 죽음-사회 문제 등 대화 담아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나태주 김예원 지음/240쪽·1만6800원·자화상



1945년생 나태주 시인(왼쪽)과 1995년생 영어교사 김예원 작가. 신간은 50년의 나이 차를 뛰어넘어 우정을 쌓은 두 사람의 대화를 담은 에세이다. 자화상 제공


친구(親舊).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보통 학교와 직장 등에서 같은 시간과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또래가 친구가 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은 놀라운 우정이 피어날 때가 있다. 시공간적 동질성 외 이들을 묶어낼 만한 보편적 정서가 있을 때 가능하다. 사람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우정에 더욱 흥미를 느낀다.

신간의 공동저자 나태주 시인과 김예원 작가가 그런 경우다. 1945년생인 나태주 시인과 1995년생 영어교사 김예원 작가의 나이 차는 정확히 쉰 살. 태어난 곳, 성장 배경, 나이까지 뭐 하나 비슷한 게 없는 둘은 2019년부터 벗이 됐다.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세대를 초월한 우정이 만들어진 것이다. 나 시인의 오랜 팬인 김 작가가 좋아하는 영시를 번역해 먼저 보냈고, 크리스마스이브에 나 시인의 답장이 왔다. 책은 반세기의 세월이 무색할 만큼 서로에게 깊이 공감하는 두 사람의 대화를 기록했다. 주제는 자존감, 죽음, 직업, 리더십, 사랑 등 폭넓다.

“딱 오십 해 차이가 났지. 그런데 참 신기해. 이렇게 말이 잘 통한다는 게 말이야.” 나 시인은 김 작가와의 우정을 이렇게 말한다. 시를 사랑하는 김 작가는 나 시인에게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심보르스카(1923∼2012)의 영시를 종종 보낸다. 나 시인은 답례로 김 작가에게 본인이 쓴 시를 가장 먼저 보여주며 감상을 나눈다. 그들의 보편적 정서는 시를 사랑하는 마음에 그치지 않는다. 시에 담긴 청년 자살과 실업 문제를 이야기하는 등 그들의 대화는 다양한 갈래로 뻗어 나간다. 김 작가는 “(나 시인은)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못 견디는 사람”이라며 그에게 청년들을 위로하는 시를 계속 지어 달라고 말한다.

내게 낯설더라도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에 스며들면서 친구가 되기 마련이다. 나 시인은 김 작가의 권유로 MBTI 검사를 한 끝에 자신이 ‘INTJ(용의주도한 전략가)’ 타입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이상한 것 좀 시키지 말라”고 투덜대면서도 김 작가를 따라 유행하는 아기 얼굴로 만들어주는 앱으로 셀카를 찍는다. 김 작가는 나 시인과 함께 계룡산 도예마을의 공방을 방문하고, 잔디밭 잡초를 골라내던 나 시인에게서 호미를 뺏어 생전 처음으로 땅을 파본다. 친구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경험을 하면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 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나태주 시인이 김예원 작가에게 선물한 자신의 대표작 ‘풀꽃’이 담긴 서화(書畵). 자화상 제공 

책에는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위로가 될 말들도 가득하다. 책 제목 ‘품으려 하니 모두가 꽃이었습니다’는 나 시인의 시 ‘꽃밭에서’의 일부다. 나 시인은 “풀꽃은 누가 기르지도 않는 ‘풀’과 모두가 원하는 귀한 ‘꽃’의 조합”이라면서도 “실은 베려고 하면 풀이 아닌 것이 없고, 키우려 하면 꽃이 아닌 것이 없다”고 말한다. 예쁘다 하면 더욱 예뻐지는 것이 사람이기에 서로에게 한없이 다정해지자는 메시지가 마음에 울림을 준다.

“하늘과 구름과 여행이 널 사랑해줄 거야. 그건 시간문제야. 암 시간문제고말고.(나태주 시 ‘그건 시간문제야’ 중)” 김 작가가 취업 준비생이던 시절 첫 시험에서 떨어진 뒤 나 시인이 그에게 보내온 시의 일부다. 삶의 굴곡을 견뎌내기 힘들 때 두 사람의 특별한 우정을 엿보면서 위로를 얻어보는 건 어떨까. 김 작가의 톡톡 튀는 젊은 감성과 나 시인의 차분한 지혜가 어우러져 진한 여운이 남는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