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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처럼 키우고 수확하고 다시 심고 ‘숲의 선순환’

입력 | 2024-04-05 03:00:00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3〉‘木맥경화’ 뚫은 뉴질랜드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시 양묘장에서 직원 로런 앤더슨 씨가 소나무 묘목을 어루만지고 있다. 로토루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건강한 나무를 얻으려면 곡식을 키우는 것처럼 좋은 묘목을 길러내는 게 중요하죠.”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북섬에 있는 로토루아시 양묘장에서 만난 직원 로런 앤더슨 씨(34)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의 논밭처럼 평지에 펼쳐진 양묘장에는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 1800만 그루가 자라고 있다.

마치 벼 모내기를 위해 모판을 짜듯, 나무를 숲에 옮겨 심기 위한 ‘묘목판’이 25ha(헥타르) 넓이의 양묘장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었다. 톱날 장비가 달린 트랙터가 축구장(0.714ha) 35개에 달하는 양묘장 일대를 누볐다. 고르게 키우기 위해 일정한 크기로 묘목을 자르고 있었다. 지난해 10월에 심은 묘목은 반년 만에 40cm 가까이 자랐다.

양묘장에서 나온 묘목은 조림지에서 두 번째 목생(木生)을 시작한다. 조림지는 나무를 수확하기 위해 만든 숲이다. 이날 일부 묘목은 양묘장에서 4.7km 떨어진 레드우드숲으로 옮겨졌다. 이 숲은 보존해야 할 천연림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조림지가 공존하는 곳으로, 영화 ‘반지의 제왕’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뉴질랜드 산림 면적은 전 국토(2670만 ha)의 36% 수준인 950만 ha. 이 중에서 조림지는 180만 ha(2022년 기준)다. 뉴질랜드는 연간 목재를 4조9000억 원 가량 수출하는 등 국내총생산(GDP)의 약 5%가 숲에서 나오는 ‘임업 강국’이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SCION)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보호와 이용이라는 양쪽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 심는 만큼 잘 활용해야 지속 가능한 자연이 유지된다”고 말했다.




28년 주기로 나무 年 200만그루 수확… GDP 5%가 숲에서 나와


[창간 104주년]
‘그린스완’ 시대, 숲이 경쟁력이다〈3〉 ‘木맥경화’ 뚫은 뉴질랜드
상품성 좋은 품종 주력으로 키워… 숲 기능 포함 안정적 목재 공급 역할
조림지내 자전거길 年 60만명 찾아
‘숲환생’ 벌채, 연간 5조 원대 수출… “환경-자원 넘어 안보영역으로 확장”
“숲 한가운데 길게 비어 있는 공간이 ‘완전한 순환’이 이뤄지는 경계선입니다.”

뉴질랜드 로토루아시 레드우드숲은 천연림과 조림지가 어우러지면서 나무를 심고 길러 이용하는 순환고리로 목맥경화를 뚫었다. 로토루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팀 페인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로토루아시 인근 레드우드숲 산등성이 중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집어낸 공간은 빽빽한 초록 숲 사이에 난 빈틈이다. 이곳에는 양묘장에서 키운 라디에타 소나무 묘목이 심어져 있었다. 멀리서 바라보면 텅 빈 곳처럼 보이는 묘목 식재 공간은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이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처럼 레드우드숲 곳곳에선 15년 넘게 자란 나무들로 이뤄진 조림지와 나무를 베어낸 곳에 새로 묘목을 심은 공간이 맞닿아 있는 경계선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심고 가꾸고 수확하는 과정이 수십 년에 걸쳐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이른바 ‘목(木)맥경화’를 뚫어냈다.

조림지엔 1ha(헥타르)당 묘목 약 1000그루를 심는다고 한다. 평평한 땅에 바로 심지 않고 약간의 흙을 쌓아 올린 뒤 심는다. 밤에 기온이 떨어지면 묘목이 상할 수 있어 흙을 보온재처럼 쓰는 것이다.

● ‘보호와 이용’ 선순환 만드는 숲

로토루아시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본 빽빽한 조림지 중간에 나무를 수확하면서 흙이 드러난 벌채지가 보인다. 벌채지에서는 28년을 주기로 1ha당 나무 500그루를 거둬들인다. 로토루아=김태영 기자 live@donga.com

뉴질랜드 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조림지에 심은 나무는 평균 28년 키워내 상품성이 가장 좋은 시기에 수확한다. 조림지 조성 초기엔 다양한 수종을 키웠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산인 라디에타 소나무가 뉴질랜드 기후와 잘 맞아 본토보다 빨리 자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최근엔 조림지의 91%를 채우고 있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천연림에서는 다양한 나무가 어울릴 수 있도록 보존하고, 활용해야 할 조림지에는 다양한 수종보다는 상품성 좋은 품종을 주력으로 키운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솔송나무가 조림지의 약 5%를 차지하는데 수확하려면 평균 40년을 키워야 한다.

조림지는 천연림처럼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환경적 측면뿐만 아니라, 안정적으로 목재를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숲을 활용한 각종 레저산업을 파생시켜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기도 한다. 페인 수석연구원은 “숲은 자라면서 물과 공기를 정화하고 탄소를 저장한다”며 “시간이 지나 울창해지면 이런 공익적 가치 외에도 숲을 활용한 여가 생활이나 스포츠 등 다른 부가가치도 창출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레드우드숲은 산악자전거의 성지로 불릴 정도로 활용 가치가 높다. 조림지 사이로 자전거길 160km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국제산악자전거협회(IMBA)는 2015년 이 길을 3등급 중 가장 높은 골드 등급으로 지정했다. 협회로부터 최고 등급을 받은 곳은 세계에서 6곳뿐이다. 뉴질랜드 전역에 있는 자전거길은 매년 60만 명이 방문해 약 3.9일간 머물며 하루 평균 292뉴질랜드달러(약 23만 원)를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레드우드숲 자전거길에서 만난 니콜 테일러 씨(32)는 “아들 네 명과 숲에 자주 온다. 광활한 자연을 체험할 수 있는 숲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 “자연 살리려 나무 벤다” 환생 위한 벌채

뉴질랜드에선 숲을 키우고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계획적인 벌채로 선순환 고리를 이어간다. 벌채된 나무는 숲에서의 목생을 마치고 가공돼 다양한 목재로 환생한다.

레드우드숲에서 33km 떨어진 텍트 공원 주변 벌채지. 30ha에 달하는 광활한 벌판에선 최근 나무를 수확한 후 땅을 헤집어 놔 흙냄새가 가득했다. 벌채를 끝낸 민둥산 너머에는 푸른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조림지가 있어 경계선이 뚜렷하게 갈렸다. 뉴질랜드 산림과학원 더글러스 건트 책임연구원은 “이곳은 자연을 파괴하는 공간이 아니라 자연을 다시 살리는 공간”이라며 “나무를 벤 자리는 20년 뒤에 다시 풍성한 숲이 될 것”이라고 했다.

뉴질랜드는 연간 4000∼4500ha 규모의 숲을 벌채한다. 28년 주기로 벌채해 1ha당 약 500그루를 거둬들인다. 매년 200만 그루가 넘는 나무를 베어내는 셈이다. 수확한 나무의 40%는 자국에서 쓰고 나머지 60%는 수출한다.

산림과학원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뉴질랜드에서 수출한 원목, 펄프, 합판 등 목재는 60억7300만 뉴질랜드달러(약 4조8937억 원)가 넘는다. 올해는 5조원 이상으로 예상된다. 뉴질랜드산 목재 수입 상위 5개국은 중국 36억2400만 뉴질랜드달러(약 2조9202억 원), 호주 6억3800만 뉴질랜드달러(약 5141억 원)에 이어 한국 5억700만 뉴질랜드달러(약 4085억 원), 일본 4억7000만 뉴질랜드달러(약 3787억 원), 미국 3억8600만 뉴질랜드달러(약 3110억 원) 순으로 집계됐다.

산림 안보에도 숲의 활용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재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 대비해 국가가 식량을 확보해야 하는 것처럼 목재 역시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일정량을 스스로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건트 책임연구원은 “그린스완 시대가 시작되면서 산림과 목재 사용 자립도는 환경이나 자원의 문제를 넘어 안보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며 “나무를 어떻게 가꾸고 쓸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 국가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강경석 사회부 차장 coolup@donga.com
▽이상훈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
김태영 김소민 명민준 기자(이상 사회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