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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3대 거장 할스의 인간적 초상[영감 한 스푼]

입력 | 2024-03-04 23:36:00

프란스 할스 레익스 회고전



프란스 할스 회고전 공동 큐레이터 프리소 라메르처. 사진 알베르티너 데이케마·레익스미술관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지난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회고전을 기억하시나요? 사전 예약에만 20만 명이 몰리며 세계적 관심을 받았죠. 그 전시가 열렸던 레익스미술관을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네덜란드 작가인 프란스 할스 회고전이 개막 2주 만에 12만 명이 관람하며 화제였습니다.

할스는 렘브란트, 페르메이르와 함께 네덜란드 17세기 미술의 3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할스의 전시를 보고 레익스미술관 큐레이터인 프리소 라메르처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진 이전에 ‘움직임’을 담다

술잔을 앞으로 내밀며 말을 거는 듯한 모습의 남자를 그린 프란스 할스의 초상화 ‘즐거운 술꾼’(1628∼1630년). 그림의 주인공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물감을 여러 층으로 쌓아 올리고, 붓 터치가 그대로 보이는 할스 특유의 표현이 잘 드러나는 대표작이다. 레익스미술관 제공 

전시를 여는 작품은 ‘즐거운 술꾼’입니다. 술에 취해 얼굴이 달아오른 남자가 술잔을 앞으로 쑥 내밀며 ‘너도 한잔해’ 하고 말을 거는 듯합니다. 주인공의 권위를 과시하려 애쓰는 어떤 초상화들과 달리, 할스의 작품은 이렇게 친근함이 돋보입니다.

할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라메르처는 페르메이르가 ‘고요함’의 화가라면 할스는 ‘움직임’의 화가라고 말합니다.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다면 할스는 정반대로 역동성이 돋보입니다. 이를테면 할스의 그림에서 측면으로 고개를 돌린 인물은 1초 뒤에 우리를 쳐다볼 것만 같죠. 이런 그림이 얼마나 새로웠는지를 요즘처럼 사진이나 영상이 흔한 시대에는 느끼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정반대인 페르메이르의 그림이 세계적 사랑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20세기 초반 레익스미술관장이었던 프레데리크 슈미트데헤너르가 페르메이르를 ‘2급 작가 중에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했던 걸 생각하면, 시대에 따라 취향이 변한다는 게 흥미롭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취향도 바뀔 수 있겠죠. 어쨌든 할스의 놀라운 점은 사진이 발명되기 전 이미 그가 ‘스냅숏’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 가치를 알기 위해 우리는 17세기의 맥락에서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죠.”

그렇다면 할스의 이런 그림들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이것은 당시 네덜란드의 사회·경제적 상황과 연관됩니다.

가장 진보했던 네덜란드 미술
보통 미술을 생각하면 떠올리는 ‘아카데미’ 미술에서는 역사화나 종교화가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런데 17세기를 전후한 네덜란드 미술에서는 이보다 상인들이 주문한 초상화나 바다와 자연을 그린 풍경화, 또 아름다운 꽃과 풍성한 과일을 담은 정물화가 유행했습니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할스의 여러 초상은 보통 결혼 등의 이벤트를 기념하기 위해 의뢰로 그려진 것입니다. 카메라가 지금처럼 흔해지기 전에는 현대인들도 사진관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처럼 말이죠.

할스의 초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부유한 상인입니다. 왕이나 성직자, 귀족이 아닌데도 그림을 주문할 수 있었던 데에는 플랑드르 지역의 발달한 상업과 종교개혁 이후 종교화를 그리지 않게 된 시대적 배경이 작용합니다.

덕분에 네덜란드 일대에서는 ‘미술 시장’이 빨리 발달했고, 화가들은 주문받지 않고도 정물화나 풍경화 등 인기 있는 주제를 그려 시장에 팔았습니다. 이런 진보한 미술의 가치는 19세기 인상파 화가와 평론가에게 재발견됩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라메르처는 할스가 인상파 화가에게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할스의 그림을 재발견한) 프랑스의 19세기 평론가 겸 기자 테오필 토레뷔르거(1807∼1869)는 17세기 네덜란드가 프랑스 공화국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또 빈센트 반 고흐는 할스의 그림이 ‘길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을 이상화하거나 종교적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그려 더욱 아름답다’고 칭송했습니다.”

즉, 할스의 그림이 보여준 현실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공화국이 탄생하는 19세기 말 프랑스가 갈망했던 것입니다. 인상파 작가들은 신화나 종교적 상징을 담은 아카데미 미술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린 할스와 네덜란드 그림이 훨씬 아름답다고 여겼죠.

암스테르담의 유력 정치인이자 귀족의 딸 카타리나 호프트가 유모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린 1619∼1620년 초상화. 프란스 할스는 당대 부유한 상인부터 귀족까지 초상화를 의뢰하고 싶어 하는 인기 작가였다. 레익스미술관 제공 

라메르처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유모와 함께 있는 카타리나 호프트’를 꼽았는데요. 그는 “아기가 입은 굉장히 화려한 옷에서 할스의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되지만, 더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건 아기의 생생한 손짓”이라고 했습니다.

“아기와 유모의 부드러운 미소와 시선은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아기가 뻗은 손은 유모를 밀어내는 것처럼 보여요. 아기들은 실제로 저런 행동을 하잖아요. 아기의 옷은 오래전인 17세기 것이지만,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손짓은 지금도 이어지는 것이기에 감동을 줍니다.”

그와의 대화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은 사람에 대한 따스한 애정이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단체 초상화에서 남성들이 뽐내는 모습까지도 모든 것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며 “이런 요소로 우리는 오래전 사람들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백 수천 년 전 작품 앞에 서면 처음엔 내가 작아지는 걸 느낍니다. 그런데 오랜 시간에도 변하지 않은 인간의 마음이 있고, 내가 죽은 뒤에도 그게 이어질 거라 생각하면 나 역시 그 위대한 흐름에 속한 큰 존재임을 느낍니다. 미술사의 아름다움은 여기에 있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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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