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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등서 28GHz 활성화 가능”… “중·저주파수 병행해야 생존”[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4-02-26 23:39:00

통신업계 ‘계륵’ 28GHz 주파수
많은 데이터 보낼 수 있는 장점… 장애물 못 피해 도달거리 짧아
통신3사, 할당 4년여 만에 취소… 스테이지엑스, 주파수 활용 도전
산업생태계 확장도 동반돼야



전남혁 산업1부 기자


“기술도, 서비스도 2018년과 2024년은 다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5세대(5G) 이동통신 28GHz(기가헤르츠) 대역 주파수를 할당받아 제4 이동통신사로 출범한 스테이지엑스의 서상원 대표는 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2018년 5G 출범 시 이동통신 3사도 같은 주파수를 할당받았지만 주파수 활용이 어렵고 막대한 인프라 비용이 든다며 포기했다. 스테이지엑스는 6년간 관련 기술이 발전했고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도 많아졌다며 활용에 자신감을 내비친 것이다.

28GHz 주파수는 통신업계에서 계륵(鷄肋) 같은 존재다. 기존에 사용되던 주파수보다 더 많은 정보를 실어보낼 수 있지만, 장애물을 피하거나 통과하는 성질이 약해 전국망 구축이 어렵다. 아직까지 주파수의 산업적 가치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많다. 열매는 달콤하지만 수확은 어려운 28GHz 주파수가 걸어온 길과 과제를 살펴본다.》





주파수는 통신산업의 핵심 자원이다. 음성, 데이터 등을 주파수에 실어 보내야 통화를 비롯한 각종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다양한 정보가 이동하는 고속도로인 셈이다. 주파수 대역이 높을수록 더 많은 데이터를 실을 수 있다. 반대로 낮은 주파수는 장애물을 극복하는 능력이 좋다. 더 많은 범위를 아우를 수 있다는 뜻이다.

장애물에 취약한 높은 주파수는 빌딩을 비롯해 각종 구조물들이 빽빽한 도심 지역에서 사용이 어렵다. 전파가 이들을 피하거나 통과하지 못하고 직진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사용자가 이용하는 전화나 인터넷 등의 서비스는 빠르기도 필요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커버리지도 중요하다. 이에 이동통신 서비스는 흔히 ‘서브(Sub 6)’라 불리는 6GHz 이하의 낮은 주파수를 활용해왔다.

활용도가 좋은 주파수는 놀게 하지 않는 법. ‘저주파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용자가 너무 많아졌다. 반대로 미답의 영역인 고대역 주파수는 뻥뻥 뚫린 8차선 고속도로에 비유된다. 가뜩이나 자체의 특성도 빠른데 이용하는 고객도 별로 없다.

● 정부, 고대역 주파수 활용 고민

이 영역을 개척해볼 수 없을까. 정부는 고민했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2018년 통신 3사에 두 종류의 주파수를 할당했다. 하나는 전국망 구축이 쉬운 3.5GHz 대역 주파수였다. 다른 하나가 바로 28GHz 대역 주파수다. 고객이 별로 없는 이 주파수를 통 크게 떼줬다. 당시 통신 3사가 할당받은 3.5GHz 주파수 폭이 각각 80∼100MHz(메가헤르츠)였던 반면, 28GHz 주파수 할당 폭은 8배에 이르는 800MHz였다.

세계 최초 5G 서비스에 사용된 것도 바로 이 주파수다.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였다. 당시 KT는 무선으로 제어되는 발광다이오드(LED) 촛불 1200여 개로 평화의 비둘기를 형상화한 개막식 공연을 비롯해 다양한 각도에서 경기를 관람하거나 1인칭 시점으로 주행 영상을 체험하는 등의 서비스에 28GHz 주파수를 활용했다.

통신사는 대형 쇼핑몰, 골프장 등 장애물이 별로 없고, 통제할 수 있는 특정 공간에 한해 시범 서비스를 도입했다. 정부와 통신사가 발굴한 대표적 28GHz 활용 사례가 지하철이다. 과기정통부와 통신 3사는 28GHz를 기반으로 한 지하철 와이파이 서비스를 2021년부터 선보였다. 지하철 터널 내에서는 다른 곳에서보다 더 긴 전파 도달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계는 명확했다.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없는 주파수 자체의 특성이 발목을 잡은 것. 통신 3사는 주파수 할당 당시 의무 구축 수량이었던 기지국 1만5000대 구축을 이행하지 않았고, 과기정통부는 2022∼2023년에 걸쳐 주파수 할당을 취소했다.

28GHz 주파수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콘텐츠와 기술이다. 짧은 도달 거리를 극복할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은 물론이고 막대한 기지국 구축 비용을 상쇄할 만한 ‘킬러 콘텐츠’가 필요하다. 통신 3사가 이를 포기한 것도 결국 킬러 콘텐츠를 발굴하지 못해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 고대역 주파수 ‘킬러 콘텐츠’ 발굴해야
제4 이동통신사로 출범한 스테이지엑스도 다양한 분야와의 협업을 통한 콘텐츠 확보를 강조했다. 서 대표는 기자간담회에서 “28GHz 주파수를 공연장, 병원, 공항 같은 밀집 지역 위주로 활성화해 고객 가치를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스테이지엑스가 공개한 협업 대상은 세브란스병원, KAIST가 있다. 스테이지엑스와 세브란스병원은 5G 기반의 의료 사물인터넷(IoT) 의료 영상, 로봇 등을 도입해 디지털을 기반으로 한 병원을 만들 계획이다.

KAIST와는 정보통신기술(ICT) 실증에 나선다. 자율주행 자동차, 드론 등을 연구한다. 28GHz 주파수는 다른 주파수보다 전파의 지연 시간이 짧은데, 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 자율주행 등 영역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고인영 KAIST 전산학부 교수는 “캠퍼스에 촘촘한 28GHz 주파수 망을 깔고, 이를 기반으로 한 소규모 데이터센터도 구축할 계획”이라며 “자동차뿐만이 아니라 주변 인프라까지 통신망으로 연결되면 더욱 안전한 자율주행을 실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스포츠 경기장 같은 대형 시설에서 활용되고 있다. 경기장은 통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적고, 수많은 사람이 몰려 데이터 장애가 많은 지역이라 고주파수를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 영역으로 꼽힌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은 12일(현지 시간) 열린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결승전 슈퍼볼 경기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얼리전트 스타디움에서 250개의 고주파 안테나를 설치해 통신 장애 유발을 완화했다.

주파수 도달 범위를 넓히려는 기술도 개발이 진행 중이다. 28GHz 주파수는 벽이나 장애물에 부딪혀 반사되면 그 성질을 대부분 잃어버리는데,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하는 초소형 안테나를 통해 반사율을 높이는 기술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여전히 28GHz 주파수의 산업적 가치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주파수 자체의 원천적 특성을 바꾸기는 어려울뿐더러, 주파수를 활용할 새로운 콘텐츠 확보는 통신사를 비롯한 전체 산업 생태계의 발전이 동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업계와 전문가들은 28GHz 주파수만으로 제4 이동통신사가 통신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울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한 통신업계 전문가는 “미국에서도 28GHz 주파수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통화 등 일반 목적이 아닌 기업 간 거래(B2B) 또는 부가서비스 용도”라며 “통신비에서 2, 3달러를 더 내면 관련 특화 서비스를 특정 구역에서 체감할 수 있는 식”이라고 말했다. 또 “스테이지엑스도 28GHz 주파수와 중·저주파수 대역을 병행해 활용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관계자는 “통신망만 구축한다고 해서 원격의료, 자율주행 같은 서비스들이 바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이런 서비스들이 아직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주파수를 활용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남혁 산업1부 기자 forwar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