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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 물결 속엔 ‘독립 만세’ 부르짖던 어린 영웅들이 있었다

입력 | 2024-02-22 03:00:00

아동권리보장원
서대문형무소 10대 수감자 112명
유관순 열사 등 시위 행렬 이끌고, 항일단체 결성해 독립운동 지원
파리강화회의에 지원 호소하기도




100회 어린이날을 맞아 발간한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

다가올 3월 1일은 105회 삼일절이다. 일제강점기였던 1919년 3·1운동이 전개되면서 많은 국민이 거리에서 ‘대한민국 독립 만세’를 외쳤지만 그 행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아동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서대문형무소 수감자 중 나이를 확인할 수 있는 765명 중 10대 연령의 수감자는 112명으로 전체의 14.8%를 차지한다. 일제강점기에도 아동은 보호와 돌봄 대상이 아닌 독립운동의 주체로서 적극적으로 항거했다.

아동권리보장원에서는 2022년, 100회 어린이날을 맞아 아동권리역사관을 개설했다. 아동권리보장원 제공

아동들은 독립 자금을 마련하고 만세 시위를 주도하는 등 다방면에서 주체적으로 활약했다. 숭의여학교 학생들은 ‘송죽결사대(松⽵決死隊)’라는 모임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 자금을 지원했다. 정신, 숙명, 이화, 배화, 진명 등의 학생들뿐 아니라 조선총독부가 세운 관립학교인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의 학생들도 일본인 교장의 감시를 넘어 대거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관순 열사는 당시 만 17세로 서명학·김복순·김희자·국현숙 등과 함께 ‘5인의 결사대’를 결성해 남대문으로 향하는 시위 행렬에 합류했다. 1919년 4월 1일 유관순 열사와 사촌 언니 유예도는 조인원·유중권·유중무 등과 함께 병천시장에서 수천 명이 참여한 만세 시위를 주도했으며 이 사건이 바로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이었다.

3·1운동 참여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서훈된 이들 가운데 가장 어린 애국지사는 당시 만 12세였던 ‘한이순’으로 양대리 장터 시위를 주도했다가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렀다. 백운호 애국지사는 8살이었던 1939년, 친구들과 비밀 항일 단체인 ‘독수리소년단’을 결성해 독립 정신을 고취하는 벽보를 붙이고 항일 격문을 작성해 전국 각지에 우편물을 발송했다.

오늘날 아동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교는 독립운동의 주무대였다. 2019년 경기도교육청의 조사에 따르면 항일 독립운동이 벌어졌던 경기도 내 학교 유적지는 10곳으로 그중 8곳이 초등학교였다. 경기 파주시 와석면의 교하공립보통학교(현 교하초), 가평군 가평공립보통학교(현 가평초)에서는 임명애, 이규봉 선생의 주도에 따라 학생들이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외쳤다.

아동의 항거는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한국남녀소년단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아동읍혈진정서’를 제출하며 지원을 호소하는 등 그 영향력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이처럼 독립운동에 많은 아동이 동참했다는 사실은 다양한 영역의 아동 관련 자료와 기록들을 수집·정리한 덕분에 알려질 수 있었다. 아동권리보장원은 2022년 100회 어린이날을 기념해 ‘대한민국 아동권리 100년사’를 발간하고 아동권리역사관을 개설했다.

100여 년이 지난 이 시대 아동의 목소리를 발현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기구가 바로 ‘대한민국 아동총회’ ‘아동위원회’이다. 전국의 아동들이 아동 정책 수립 및 사업 운영에 대한 참여, 아동 사업에 대한 자문, 의견, 토론 등 다양한 아동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아동권리보장원 정익중 원장은 “아동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향후 100년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입양 기록 등 아동 전반의 사료들을 기록하고 보존할 수 있는 기록관이 반드시 필요하다”라면서 “소중한 아동 관련 기록들이 잘 보존될 수 있도록 국민적 관심과 참여를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조선희 기자 hee31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