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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집단사직 對 면허정지… 무조건 병원 복귀하고 대화로 풀라

입력 | 2024-02-21 00:00:00

전국 5개 주요 상급종합병원 '빅5'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을 한 가운데 20일 오전 해당 병원 중 한 곳의 응급실 출입구 앞에 '응급실 병상이 부족해 진료가 불가하다'는 문구와 함께 인근 병원 응급실이 안내돼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국 대형 병원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증원 계획에 반발하며 집단 사직서를 내고 어제부터 진료 거부에 들어갔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전국의 수련 병원 221곳에 근무하는 전공의 1만3000명 가운데 약 절반이 사직서를 냈고, 이 중 1630명이 가운을 벗고 병원을 떠났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복귀하지 않으면 면허정지 행정처분 절차를 밟겠다며 강경 대응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의정(醫政) 간 극한 대립이 출구를 찾지 못하면서 중환자들의 수술이 줄줄이 취소되고 응급실은 마비 상태에 빠져드는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심정지 환자 등을 제외한 응급실 진료 불가 안내문을 내걸었다. 울산대병원의 권역 응급 및 외상센터를 시작으로 지방의 주요 병원들도 줄줄이 응급 환자를 돌려보내고 있다. 인천에서 발생한 패혈증 환자는 25곳에 전화를 돌리다 서울 국립중앙의료원에서 간신히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없어 다리 절단 수술을 못 받고, 쌍둥이를 임신한 산모가 제왕절개 수술이 연기돼 발을 동동 구르는 기막힌 현실이다. 의사가 응급실과 수술실을 떠나면 어떤 비극이 펼쳐질지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정부는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겠다고 한다. 2000년 이후 세 차례의 의사 파업에 정부가 무기력하게 대응하면서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는 자만을 부추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강경 일변도의 대응만으로는 당장의 인명 피해를 막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28회의 의정 협의체 회의를 통해 의대 증원 규모를 협의했다고 하나 의사들은 ‘2000명 증원’이라는 정부안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라며 정책 추진이 일방적이라고 주장한다. 의사들은 당장 응급실과 수술실 환자 곁으로 복귀하고, 정부도 의사들 의견을 경청하고 우려와 불신을 해소해 의료대란에서 벗어날 출구를 찾아내야 한다.

전국 40개 의대 학장 모임이 “의대 입학정원을 한번에 2000명 늘리면 교육이 어렵다”며 대안적 증원 규모를 제시하는 등 의사들 사이에서도 단계적 증원은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필수의료 강화의 필요성에도 이견이 없는 상태다. 의정 간 공통의 인식을 바탕으로 견해차를 줄이고 접점을 넓혀 나가길 기대한다. 파국이 뻔히 보이는 치킨 게임을 고수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책임진 당사자들이 피해야 할 하수(下手), 하책(下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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