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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문병기]‘나토 발언’서 미리 보는 트럼프 2기의 새 청구서

입력 | 2024-02-18 23:45:00

‘안보 무임승차론’ 넘어 안보질서 재편 시사
‘中대응’ 주한미군 역할 조정 압박 대비해야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11월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작심한 듯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공세를 퍼붓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대선 유세에서 나토 방위비 기준을 달성하지 못한 유럽 주요국을 ‘채무 불이행자’라고 규정하며 “러시아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독려하겠다”며 침공까지 부추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가 나토에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 하지만 ‘안보 무임승차론’을 제기하며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던 집권 1기를 넘어 동맹국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사용을 독려하겠다는 이 발언은 미국을 최강대국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 온 동맹 체제의 근간을 흔들 폭탄 발언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4일에도 나토 동맹국이 현재 각국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로 부담해야 하는 비율을 2%에서 4%로 높이라고 촉구했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동맹국은 나토의 집단안보 체제에서 제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측근도 등장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뒤에 깔린 정치적 계산에 주목한다. 이 발언은 미 상원이 중남미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한 국경 대책 강화와 우크라이나 지원을 묶은 안보 지원 예산 패키지를 같이 처리하기로 합의한 직후 나왔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일부 강경파는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 통과를 위해 불법 이민자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며 해당 예산의 처리를 지연시켜 왔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공화당의 국경 강화 요구를 대폭 수용하면서 우크라이나 예산 지원을 막기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의 방위비 분담금 추가 증액 등을 언급하면서 우크라이나 지원을 반대할 새로운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다. 워싱턴 소식통은 이 발언을 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충동적인 면모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의 집요한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논평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세 때마다 공약으로 강조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식은 우크라이나가 상당 부분 영토를 포기해야만 가능하므로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또한 우크라이나 종전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1기 추진했던 1만2000명의 독일 주둔 미군의 철수 계획을 현실화시킬 발판도 될 수 있다. 즉 침공 독려 발언의 기저엔 중국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 유럽에 대한 미군 개입을 줄이려는 외교 기조가 깔려 있는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이런 행보는 그의 재집권 시 한국에 내밀 새 청구서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로버트 오브라이언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주독미군을 괌, 팔라우, 하와이, 알래스카 등 인도태평양의 다른 곳으로 배치할 수 있다”고 했다. 또 “중국의 도전에 대응하는 것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등 모든 동맹의 과제”라며 “한국이 미국과의 동맹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다”고도 강조했다. 현재 북한 대응으로 국한된 주한미군의 역할과 구성을 조정해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속내다.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주한미군 역할을 조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대만 분쟁 시 한국의 역할 등 동북아 안보 구조에 중요한 변화를 불러올 수 있는 사안이다.

유럽에선 ‘트럼프 리스크’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데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차기 나토 사무총장으로 거론되는 마르크 뤼터 네덜란드 총리는 17일 “이제 그만 징징거리고 유럽의 이익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유럽 못지않은 ‘트럼프 리스크’에 직면한 한국도 흘려듣지 말아야 할 얘기다.






문병기 워싱턴 특파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