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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상업부동산 위기 현실로, 美-日-유럽 은행 동시 강타

입력 | 2024-02-03 01:40:00

대출 부실 美 NYCB 주가 반토막
日 아오조라 은행장 “책임지고 사임”



미국 오피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업부동산 부실에 따른 은행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오피스 밀집 지역인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전경.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상업용 부동산 침체에 따른 은행 부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유럽 은행까지 강타하고 있다. 올해 만기 대출 규모만 720조 원으로, 이 중 상당수가 부실화 위험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글로벌 은행들이 최근 실적 발표에서 상업 부동산 위기가 실적 악화로 현실화되고 있다고 밝히자 일부 은행 주가는 이틀 새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공포의 진원지로 꼽힌 곳은 미 중형 은행인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다. 오피스 빌딩을 비롯한 부동산 대출 부실 우려에 노출됐다는 점이 알려진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하루 동안 주가는 37.7% 폭락했고, 이어 1일에도 11.1% 떨어졌다. 일본 아오조라 은행과 독일 도이체방크, 스위스 율리우스 베어 은행도 연달아 상업 부동산발 손실을 경고한 상태다. 아오조라 은행 주가는 최근 5일 동안 32.4% 이상 폭락했고, 은행장은 책임을 지고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율리우스 베어 은행장도 이날 사퇴했다.

앤 월시 구겐하임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최근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 “상업 부동산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됐다”며 금융권 위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한폭탄 된 美상업부동산 대출 2900조, 은행위기 재연 공포

美부동산위기, 美-亞-유럽 강타
‘위험 노출’ NYCB가 충당금 높이자
은행주, SVB 파산이후 최대폭 하락
日-獨-스위스 은행들로 위기 확산… 국내 금융시장도 직간접 충격 전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년여가 지났지만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오피스 건물은 여전히 높은 공실률과 고금리, 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로스앤젤레스의 랜드마크 건물 중 하나인 62층짜리 에이온센터가 2014년 매입가보다 45% 싼 가격에 팔려 주목을 받았다.

문제는 건물주들이 최대한 미뤘던 대출금 만기가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정보업체 트렙에 따르면 올해 미국에서 만기가 되는 상업부동산 대출은 5440억 달러(약 720조 원), 2027년 말까지 2조2000억 달러(약 2907조 원)에 달한다. NYCB나 아오조라은행 같은 중형 은행은 특정 포트폴리오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 위험에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 “미국발 상업부동산 위기가 미국, 아시아, 유럽 등 3개 대륙을 강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2900조 원 규모 대출 ‘시한폭탄’

NYCB는 지난해 실리콘밸리은행(SVB)에 이어 파산했던 시그니처뱅크를 인수하며 자산 규모를 1000억 달러(약 133조 원) 이상으로 높여 ‘은행 위기의 승자’로 불렸다. 그러나 NYCB가 지난달 31일 실적 발표에서 상업부동산뿐 아니라 뉴욕시 규제에 따라 임대료 제한에 묶여 있는 공동주택 대출 부실 우려에 대비하기 위해 대손충당금을 높였다고 밝히자 곧바로 투자자들을 자극했다. NYCB가 상업부동산 위기의 진원지가 될 수 있다는 우려에 휩싸인 것이다.

이에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NYCB를 투기 등급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검토 대상’에 올렸다. 무디스는 “뉴욕 오피스 및 공동주택 부동산 부문에서의 예상치 못한 손실, 이익 감소, 자본금 감소, 시장성 자금 조달 비중 증대 등을 반영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3월 SVB 파산 당시를 떠올리게 하는 주가 폭락에 은행주 전반이 이틀 동안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지난달 31일 KBW나스닥지역은행지수(KRX)는 약 6% 하락했는데, 이는 SVB 파산 이후 최악의 하락 폭이다. KRX는 2일에도 2.3% 하락했다.

● 3대륙 때린 부동산 위기… “韓 안심 못해”

위기감은 일본과 독일, 스위스로 확산 일로다. 일본 중견 은행인 아오조라은행은 1일 올해 1분기(1∼3월) 미 상업부동산 대출에 따른 손실로 기존 240억 엔(약 2170억 원)의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던 기존 전망을 280억 엔(약 2530억 원) 순손실로 급격히 내렸다. 이날 주가가 21% 하락했고 2일에도 15.9% 급락했다. 글로벌 은행인 도이체방크도 미 상업부동산과 관련된 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1년 전 2600만 유로(약 374억 원)에서 1억2300만 유로(약 1770억 원)로 늘렸다고 밝혔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상업부동산 침체도 은행권 부실로 이어지고 있다. 유럽 부동산 재벌 시그나그룹의 파산 신청으로 스위스 3대 은행이던 율리우스베어은행은 1일 대손충당금 7억 달러(약 9300억 원)를 발표했다. 이 은행의 필리프 리켄바허 최고경영자(CEO)는 즉각 사임했고 시그나에 대출을 결정한 부서는 폐쇄하기로 했다.

미 월가에선 이번 사태가 지난해 SVB 파산 당시처럼 급격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이나 파산으로 이어지진 않을 것으로 보면서도 2년 이상 고질적 문제로 지속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엘리자베스 듀크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이사는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누군가 ‘(부실은) 이게 전부’라고 말할 때 실상은 전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국내 금융시장도 직간접적인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해외 부동산 익스포저가 큰 국내 금융회사의 건전성도 악화할 수 있다. 다만 금융 당국은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 손실이 국내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