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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뚜기와 하겐다즈가 동네 맛집을 리모델링한 이유 [브랜더쿠]

입력 | 2024-01-26 10:20:00


‘브랜더쿠’는 한 가지 분야에 몰입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덕후’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자신이 가장 깊게 빠진 영역에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커뮤니티를 형성해 자신과 비슷한 덕후들을 모으고, 돈 이상의 가치를 찾아 헤매는 이들의 이야기에 많은 관심 부탁합니다.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의 압구정 카페 골목엔 얼마 전까지 독특한 간판 하나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곤 했다. 오뚜기 후추통과 똑 닮은 디자인에 '순후추네'라고 적힌 간판. 식당 안엔 오뚜기 순후추로 요리한 메뉴와 빈 후추통으로 꾸민 장식물이 가득했다. 이곳의 정체는 냉동 삼겹살 맛집 '후추네'다. 성수역 삼겹살 맛집으로 유명한 '꿉당'의 강진현 대표가 창업한 매장으로 2022년 12월 오픈 직후부터 입소문이 났던 곳이다.

동네 맛집 후추네 이름 앞에 '순'을 더하고 가게를 후추통으로 채워버린 주인공은 바로 오뚜기다. 오뚜기를 대표하는 스테디셀러 상품 '순후추'의 판매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후추네를 컬래버레이션 팝업스토어 순후추네로 지난 10일까지 운영했다.

또 다른 '핫플' 용산구 한남동에선 글로벌 아이스크림 하겐다즈가 국내 최초 크로플을 개발한 카페 '아우프글렛'과 함께 팝업스토어 '마이 리틀 피스타치오 트리*'를 지난해 12월 10일까지 선보였다. 하겐다즈 신제품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홍보하기 위해 기획한 공간이다.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아우프글렛의 감성으로 재해석한 메뉴와 인테리어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다.

*성수점, 금호점, 잠실점, 도산공원점에서도 운영함.

대형 F&B 기업과 중소 로컬 브랜드 간의 컬래버레이션이 눈부신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의 협업은 1차원적이었다. 고작해야 대기업 주도로 일부 밀키트와 간편식 등을 공동 기획하거나 매장의 극히 일부분만 꾸미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맛집 매장 전체를 아예 컬래버레이션 팝업스토어로 꾸미는 사례가 속속 나오고 있다. 대기업과 로컬 브랜드가 한층 입체적인 형태로 손을 잡고 방문 고객에게 공간 경험을 포함한 '오감 자극 마케팅'을 선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1) 순후추네 팝업스토어, 2) 마이 리틀 피스타치오 트리 팝업스토어_출처 : 오뚜기, 콘테



로컬 매장이 필요했던 이유
오뚜기와 하겐다즈는 왜 로컬 매장과 함께 컬래버레이션 팝업스토어를 기획했을까. 1차적으론 ‘역사 깊은 브랜드가 젊어지려는 시도였다’고 볼 수 있다. 오뚜기 순후추와 하겐다즈는 각각 1974년, 1961년 출시됐다. 50년 넘게 쌓아온 정체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젊은 이미지를 더하기 위해선 조금 색다른 시도가 필요했다. 두 브랜드는 맹목적으로 젊음을 쫓지 않았다. 이들은 긴 세월 동안 지켜온 브랜드 철학을 공유하는 무대로 로컬 매장을 택했다. 오뚜기와 하겐다즈가 알리려고 했던 건 크게 2가지다.

이 분야에서는 우리지! 상징적인 장인정신
빠르게 신제품이 쏟아지는 F&B 시장에서 업력이 쌓인 브랜드는 최초로 상기될 수 있는 상징성을 갖춰야 한다. 후추 하면 오뚜기 순후추, 아이스크림 하면 하겐다즈를 떠올리듯 말이다. 하지만 업력에 비례해서 자동으로 상징성이 축적되진 않는다. 오히려 그 음식을 꾸준히 연구하는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간 오뚜기가 순후추를 활용한 라면, 떡볶이 등을 출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순후추네 팝업스토어_출처 : 오뚜기


그렇다면 오뚜기 순후추가 후추로 인정받은 맛집에서 그 식당과 공동 개발한 메뉴를 판매한다면 어떨까? 손님들이 재밌고 새로운 미식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후추’라는 제품군과 오뚜기의 연결고리를 견고하게 만든다. 오뚜기의 생각도 같았다. 후추네가 냉동 삼겹살과 쭈꾸미 볶음 등 후추를 활용한 메뉴들로 성행했고, 강진현 후추네 대표 역시 외식업계의 ‘후추 러버’로 유명하단 점에서 협업을 제안한 것. 강 대표와 공동 개발한 메추리알 후추 떡볶이, 분식집 후추 진라면, 컵라면 후추 볶음밥은 순후추네의 히트 메뉴로 등극했다.

오뚜기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익숙한 F&B 상품일수록 기존의 맛을 토대로 꾸준히 새로운 맛을 공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소비자에게 즐거운 경험으로 인식될 수 있어요."

하겐다즈 '마이 리틀 피스타치오 트리' 팝업스토어_출처 : 콘테


하겐다즈는 ‘창의적인 디저트 맛집’이라고 불리는 아우프글렛에 꽂혔다. 사내 크리에이티브 기획팀이 있을 정도로 새로움을 중시하는 아우프글렛은 그동안 기발한 디저트로 승부했다. 크로와상 반죽을 와플기에 구워낸 크로플, 베이글에 크로와상 식감을 더한 베로와상 등이 대표작이다. 국내 크로플의 창시자답게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얹은 크로플이 시그니처 메뉴라는 점에서도 하겐다즈와 어울렸다. 하겐다즈는 아우프글렛의 창의력이 담긴 디저트에 피스타치오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신메뉴 5종(파르페, 아포가토, 크로플, 베로와상 등)을 내놨다. 특히 피스타치오 크로플은 단골들 사이에서 인기 메뉴로 부상했다.

하겐다즈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하겐다즈의 맛을 새롭게 해석하려면 맛뿐 아니라 크리에이티브함까지 갖춘 브랜드가 필요했어요, 아우프글렛과 협업한 이유죠."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 원 메시지
F&B 대기업은 자사 제품과 관련된 시그니처 메뉴를 보유한 식당을 ‘전시 무대’로 활용할 수 있다. 특히 광고나 맛으로만 설득시키기 어려운 상품의 원 메시지(One Message)를 구체적으로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효하다. 원 메시지란 제품으로 전하고 싶은 경험을 정리한 문장이다. 예컨대 오뚜기 순후추의 원 메시지는 오랫동안 즐거운 맛을 선사하는 ‘더 진한 진심’. 오뚜기는 그 진심을 새롭게 소구하기 위해 연남, 성수, 방배의 핫한 카페들과 후추로 만든 커피 및 젤라또 등을 내놓기도 했다.


한편 후추네에선 메뉴 개발을 넘어 원 메시지를 표현하는 방향으로 매장 전체를 꾸몄다. 모든 테이블에서 후추를 뿌리며 고기를 굽는 장관이 펼쳐지는 식당인 만큼, 순후추의 메시지를 그려낼 스케치북으로 제격이었다. 라면, 국밥, 떡볶이 등 갖가지 순후추 식품을 전시해 그간 다양한 맛으로 ‘진한 진심’을 전해온 과정을 알리고, 빈 후추 통을 활용한 모빌과 액자 및 대형 포스터 등 재미난 볼거리를 더했다.

오뚜기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후추네는 매장명만 들어도 후추가 떠오른다는 점에서도 재밌다고 느꼈어요, 메뉴는 물론 인테리어 곳곳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죠."

오뚜기 순후추로 꾸며진 순후추네_출처 : 오뚜기


하겐다즈는 ‘디저트로 달콤한 순간을 선물한다’는 원 메시지를 아우프글렛에 이식했다. 달콤한 디저트뿐 아니라 감각적인 인테리어로도 인기 있는 아우프글렛을 아이스크림과 함께 연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꾼 것. 매장 외관에는 초대형 하겐다즈 통 모형과 아우프글렛 케이크용 박스로 포토존을 꾸몄고, 매장 내부에는 실제 하겐다즈 통을 액세서리로 매달아 팝업스토어 테마인 ‘피스타치오 트리’를 구현했다. 여기에 별도 제작한 ‘연말에 듣기 좋은 플레이리스트’를 BGM으로 더해 감성적이고 달달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지난해 12월 10일까지 운영된 해당 팝업은 크리스마스를 미리 즐길 수 있는 핫플레이스로 SNS에서 바이럴됐다.

하겐다즈가 들려주는 비하인드
"달콤한 순간을 오감으로 만끽할 수 있는 공감을 추구했어요, 맛있는 메뉴와 오브제 그리고 배경음악까지 세심하게 설계해야 했죠."

하겐다즈의 빈 통과 아우프글렛 케이크 박스로 제작한 장식물_출처 : 콘테


F&B 대기업과 로컬 매장의 컬래버레이션 팝업스토어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시장의 주요 소비층인 2030대에게 효과적인 마케팅인데다, 자사 브랜드와의 연결점도 분명한 로컬 매장은 F&B 대기업이 탐낼만한 창구일 수밖에 없어서다. 2024년에도 로컬 매장을 찾아다니는 F&B 대기업들의 발걸음은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 콘텐츠는 F&B 덕후들을 위한 교육 커뮤니티 '인사이트플랫폼'과 함께 제작했습니다.


인터비즈 이한규 기자 hanq@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