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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폭처럼 흉기 손잡이 테이프로 감았다” 수사 전문가가 본 이재명 피습

입력 | 2024-01-06 10:38:00

“흉기 놓치지 않으려 등산용 칼 손잡이 개조”… 치명상 노린 계획범죄 가능성




“지금까지 나온 경찰 수사 결과를 보면 범인은 등산용 칼을 미리 사 손잡이를 빼고 자기 손에 맞게 개조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일선에서 조폭(조직폭력배)을 수사할 때 이들이 상대방을 해치려고 흉기 손잡이를 속칭 ‘호타이’, 즉 붕대 등으로 감아놓은 경우가 적잖았다. 피해자를 공격할 때 흉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일종의 대비책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표를 습격한 범인 김 모 씨의 범행도 상당히 계획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길이 17㎝, 날 길이 12.5㎝ 등산용 칼로 범행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습격한 피의자 김 모 씨(가운데)가 1월 4일 부산 연제구 연제경찰서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기 위해 부산지법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흉기로 찔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1월 4일 발부된 김 모 씨(67)의 범행 수법에 대해 백기종 전 경찰대 수사직무과정 외래교수는 이같이 분석했다. 김 씨는 1월 2일 오전 10시 29분쯤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가덕도신공항 예정 부지를 둘러본 뒤 차량으로 이동하던 이 대표를 습격했다. 수서경찰서 강력팀장을 지내는 등 30여 년간 수사 일선에서 활약한 베테랑 경찰 출신인 백 전 교수는 “김 씨의 범행은 상대방을 살해하거나 중대한 위해를 가할 목적으로 흉기를 미리 개조하는 조폭의 범죄 방식을 방불케 한다”며 “이 대표의 목을 직접 공격했다는 점에서 경동맥에 치명상을 입혀 살해하려 한 의도가 보인다”고 덧붙였다. 범행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보면 지근거리에 들어선 김 씨가 갑자기 몸을 날리듯 강한 힘을 가해 이 대표의 목 주변을 찌른 것으로 나온다.

한때 범인이 이 대표를 습격할 때 사용한 도구가 ‘나무젓가락’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나돌았으나, 실제 김 씨가 범행에 쓴 무기는 치밀하게 준비한 흉기였다. 부산경찰청 수사본부는 김 씨가 사용한 흉기는 전체 길이 17㎝, 날 길이 12.5㎝의 등산용 칼이라고 1월 3일 밝혔다. 김 씨가 범행을 위해 사전에 칼자루를 제거하고 손잡이를 테이프로 감는 식으로 흉기를 개조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범행 전 칼날을 A4 용지로 감싼 정황도 포착됐다. 압수한 흉기를 감정한 결과 날붙이 형태와 상처가 일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범인이 휘두른 흉기에 왼쪽 목 내정경맥 손상을 입은 이 대표는 부산대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고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돼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마친 이 대표는 현재 서울대병원에서 회복 중이다. 이 대표의 수술을 집도한 민승기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1월 4일 브리핑에서 “이 대표가 왼쪽 목에 1.4㎝ 자상을 입었으나 순조롭게 회복 중”이라면서도 “외상 특성상 추가 감염이나 수술 합병증 등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경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김 씨 “李 싫어서 범행… 살인 고의 있었다”

이재명 대표가 1월 2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 대항전망대에서 흉기로 피습당한 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뉴시스]

수사당국과 범죄 전문가들은 김 씨의 범행 전 동선과 공격 수법, 생활 패턴 등을 토대로 볼 때 계획범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는 범행 전날인 1월 1일 오전 자신의 주거지인 충남 아산에서 KTX로 부산에 도착했다. 같은 날 그는 부산에서 KTX를 타고 울산역으로 갔다가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고, 이튿날인 2일 이 대표가 방문한 가덕도 대항전망대로 향했다. 범행 전 마치 이 대표의 동선을 쫓는 듯한 행적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동선에서 김 씨가 울산역을 찾은 점에도 이목이 쏠린다. 이 대표는 피습 당일 경남 양산시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을 예방할 계획이었는데, KTX 울산역은 평산마을에서 가까운 역이다. 실제로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인 2022년 5월 10일 평산마을 사저로 가는 길에 KTX 울산역에 내린 바 있다. 김 씨가 이 대표의 예상 동선을 사전 답사했을 개연성이 의심되는 이유다. 이외에도 김 씨가 1월 1일 이 대표의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방문 현장과 지난해 12월 이 대표가 참석한 부산 전세사기 피해자 간담회장에도 모습을 드러낸 정황이 확인됐다.

범행 당일 김 씨가 ‘내가 이재명’이라고 적힌 파란색 왕관 모양의 모자를 쓴 채 이 대표의 지지자를 가장한 점, 생계를 제쳐두고 집과 직장이 있는 충남 아산을 떠나 부산·울산·경남을 떠돈 점도 계획범죄를 추정케 하는 단서다. 경찰은 1월 3일 김 씨 자택과 직장인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실, 차 등을 압수수색해 개인용 컴퓨터와 칼 가는 도구 등을 확보했다. 한편 김 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대표를) 살인할 고의가 있었다” “공범은 없고 단독 범행”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까지 수사당국이 범인의 통신내역 등을 분석한 결과 공범이 있는 정황은 드러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간의 이목은 이 대표를 습격한 김 씨의 범행 동기에 모인다. 검거 직후 침묵으로 일관하던 김 씨는 경찰 조사가 진행되자 “이 대표가 싫어서 범행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고 한다. 김 씨는 1월 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자 부산지법에 이송되는 과정에서 범행 동기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경찰에 8쪽짜리 변명문을 제출했다. 그걸 참고하면 된다”고 말해 ‘변명문’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씨는 서울 영등포구 공무원으로 일하다 20여 년 전부터 아산에서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조용한 성격이었으나 정치 유튜브를 자주 시청하고 정치 문제를 놓고 주변인과 갈등을 빚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김 씨의 당적(黨籍)을 놓고 논란도 불거졌다. 그와 이름, 생년월일이 같은 인물이 2015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에 가입해 2020년까지 당적을 유지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 정당에서 탈당한 김 씨는 지난해 4월 민주당에 입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음모론 확산에 여야 대책 마련

경찰이 1월 3일 이재명 대표 습격범 김 모 씨가 운영하는 충남 아산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를 압수수색하고 있다. [뉴스1]

온라인 공간을 중심으로 김 씨의 범행을 둘러싼 각종 음모론이 확산하자 여야 공히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국민의힘 윤희석 선임대변인은 1월 4일 논평에서 “이재명 대표 피습사건은 대한민국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대한 위협”이라며 “각종 음모론을 유포해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혼란스러운 모습이 곳곳에서 보이는데 모든 음모론과 가짜뉴스에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도 이 대표 피습에 대한 음모론을 “허위사실 유포죄에 해당하는 가짜뉴스이자 2차 테러”(1월 3일 홍익표 원내대표 발언)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는 전담기구를 꾸렸다.

유력 정치인을 노린 테러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6년 5월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서 서울시장 선거 지원에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촌 유세 현장에서 ‘커터칼’에 얼굴을 피습당했고, 2022년 3월 대선 지원 유세 중이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는 둔기로 머리를 공격당한 바 있다.

이 대표가 피습 후 수술을 받고 병상에서 회복 중인 상황에서 여야 정치 일정도 중대한 변수를 맞았다. 총선이 100일도 안 남은 데다, ‘김건희 특검법’과 ‘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이른바 쌍특검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이 첨예한 상황이다.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선언, 비주류 의원 모임 ‘원칙과 상식’ 탈당 등 민주당 내홍도 당분간 소강 상태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이 대표 관련 재판도 줄줄이 연기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에서 1월 8일 열릴 예정이던 이 대표의 ‘검사 사칭 위증 교사’ 사건 첫 공판은 같은 달 22일로 연기됐다. 첫 공판의 경우 피고인 출석이 의무인데, 이 대표의 출석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을 감안해 재판부가 직권으로 공판기일을 늦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재판부가 심리하는 ‘대장동·위례·성남FC·백현동 의혹’ 재판도 당초 9일로 예정된 공판기일이 변경됐다. 향후 재판 절차에 대한 전반적 합의를 위한 공판준비기일이 1월 12일 열릴 예정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가 심리하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공판은 1월 19일로 예정됐으나, 이 또한 연기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2호에 실렸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