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마누엘 로차 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가 올 6월 쿠바 공작원으로 위장한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과 만나 40년간의 쿠바 스파이 활동에 대해 “그랜드슬램 이상”이라고 말하는 장면. 미국 법무부 제공
미국 국무부 고위직을 지내며 40년간 쿠바 스파이로 활동해 온 빅터 마누엘 로차(73)는 지난해 11월 마이애미의 식당가에서 젊은 정보요원을 만났다. 로차는 접선 지점에서 수십 m 떨어진 곳에서 한참 동안 이 청년을 지켜보다 다가갔다. 청년은 유창한 스페인어로 말문을 열었다.
“(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지부 미겔이라고 합니다. 아바나(쿠바의 수도)에 있는 당신의 친구들로부터 메시지가 있습니다. 제가 당신의 새로운 접촉 포인트입니다.”
“미겔이라고 했나? 나는 ‘아바나’ 이런 표현 안 써. 그냥 ‘그 섬(The Island)’이라고 하지. 뭘 적지도 않아. 꼬리가 잡히니까.”(로차)
“(이 일을) 몇 년이나 하신 건가요?”(미겔)
“거의 40년.”(로차)
“와우… (쿠바와) 오랜 기간 우정을 지켜주셨네요.”(미겔)
“쉽지 않았지. 많은 걸 희생했고…. 한순간도 긴장을 놓은 적이 없어. 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니까. 그래도 신념이 있으면 정신을 붙잡게 돼.”(로차)
미국 국무부에서 승진을 거듭하던 전성기 시절의 로차.
로차가 쿠바에 포섭된 시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73년경이다. 당시 로차는 칠레를 여행 중이었다.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쿠데타를 일으켜 사회주의자 대통령인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했고, 미국이 이 군부정권을 물밑 지원하던 때였다.
쿠바 역시 피델 카스트로가 1959년 사회주의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이후 미국 재산을 국유화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고 있었다. 쿠바는 미국과의 대결을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고 선전하며 남미 출신 미국인을 첩보원으로 끌어들였다. 아이비리그 출신으로 미 주류 사회 침투 가능성이 높은 로차는 매력적인 포섭 대상이었다.
1959년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쿠바 정권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는 쿠바 내 미국인 재산을 국유화해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받았다.
“(쿠바) 본부와 마지막으로 닿은 게 2017년쯤이었어. 보통의 삶으로 돌아가 있으라더군. 그 후로 난 우익 인사로 살았지. 그게 내 레전드(legend)야.”(로차)
‘레전드’는 비밀요원이 정체를 숨기려 만들어낸 캐릭터를 뜻하는 은어다. 로차는 2002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 퇴직 후에도 쿠바를 관할하는 미 남부사령부 고문으로 6년 넘게 활동하며 군사기밀에 접근했다. 로차는 미겔에게 “젊은 요원을 보게 돼 뿌듯하다”며 회한에 잠긴 듯 ‘나 때는’ 발언을 이어갔다.
“우리가 해온 일들은 정말 대단했어. 그랜드 슬램(세계 4대 테니스 대회인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US오픈에서 모두 우승하는 것) 이상이지. 그들(미국)은 우리를 과소평가했어.”
미겔은 올 6월 로차와 세 번째 접선을 했다.
“본부에서 확인하려는 사항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전히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는지 궁금해합니다.”(미겔)
“그런 걸 물어온다니 화가 나는군. 마치 내가 남자가 맞느냐고 묻는 거니까. 바지를 내려서 성기를 보여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어.”(로차)
두 사람의 대화는 미 연방검찰 공소장에 녹취록으로 첨부돼 있다. 로차는 40년간 숨겨 온 정체를 연방수사국(FBI) 위장 요원인 미겔에겐 미처 감추지 못했다. 세 번째 접선 후 체포된 로차는 미겔과의 만남 자체를 부인하다 둘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수사관이 들이밀자 입을 닫았다.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4일(현지 시간) 로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면서 “외국 요원이 미국 정부의 최고위직에, 가장 오래 침투한 사건”이라고 했다. 로차는 내년 초 마이애미 법정에 선다.
메릭 갈런드 미국 법무장관이 4일 쿠바 측 비밀요원으로 40년 간 활동해온 로차 전 대사에 대한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AP 뉴시스
로차의 전직 국무부 동료들은 “감쪽같이 속았다는 생각에 치가 떨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1990년대 중반 쿠바의 미국 대사관격인 아바나의 미 이익대표부에서 로차와 함께 근무했던 한 간부는 “당시 카스트로 정권의 독재를 같이 한탄했었고, (로차가) 아이비리그 동문들의 우파 성향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해 한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신광영 기자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