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물리학상 수상 조르조 파리시 “엄청난 생각, 하루에 떠오르지 않아 실패후 잠복기-증명 등 4단계 거쳐야 한국 급성장, 과학 투자했기에 가능”
20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물리학자 조르조 파리시가 그해 이탈리아 로마에서 연설하고 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은 과학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과학자들이 ‘믿어주세요’라며 거리로 뛰쳐나가 말하고 다닐 수는 없으니 결국 책을 써서라도 과학자의 일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Antonio Masiello 게티이미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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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면 이후로도 그 분야를 계속 고수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일찍 성공했더라면 오로지 입자물리학만 공부하고 다른 분야는 공부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복잡계(complex system) 연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을 기회도 없었겠죠.”
1973년 스위스 제네바. 당시 25세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던 파리시는 네덜란드 물리학자 헤라르뒤스 엇호프트(당시 27세)와 아침 식사를 하며 “정말 대단한 성과를 거두셨다. 이 연구 결과를 다른 이론에 사용할 수 있을지 한번 보자”고 했다. 엇호프트가 분석한 쿼크(물질을 이루는 기본 입자) 관련 연구를 확장해보자는 가벼운 제안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머리를 맞댔지만 쉽지 않다고 보고 포기했다. 하지만 얼마 뒤 미국 물리학자들이 엇호프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양자색소역학’ 이론을 만들어냈다. 파리시는 깜짝 놀랐다. 자신도 30분만 더 투자했으면 충분히 생각해낼 수 있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미국 물리학자들은 이 이론으로 200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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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신간에서 ‘미시적 창의력’을 강조한다. 일상에서 떠오른 작은 아이디어를 시간을 갖고 조금씩 발전시키면 큰 발견으로 키울 수 있다는 것. 연구의 시작-실패 후 잠복기-깨달음의 순간-수학적 증명이란 4단계를 긴 인내심을 갖고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하루아침에 엄청난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매일 문제를 들여다보고, 조금씩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되면 질문에 다르게 접근할 수 있어요. 열려 있는 사고와 이해력을 갖고 깨달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는 신간에서 가난했던 한국이 빠르게 성장한 건 연구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가 활발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국가가 부(富), 번영, 국민의 생활 수준 향상을 꾀한다면 과학에 투자해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은 잘 이해하고 있다”며 “한국에는 매우 훌륭한 과학자들이 많다. 앞으로는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 7월 다른 과학자 99명과 ‘기후 위기를 단순한 악천후로 축소하지 말라’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사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9월 유럽에 에너지 공급 부족이 심해지자 “파스타를 만들 때 끓는 물에 면을 넣고 끓을 때까지 다시 가열한 뒤 냄비 뚜껑을 덮고 가스 불을 끄거나 최소한으로 줄이라”며 연료를 절약하는 법을 페이스북에 올려 화제가 됐다. 그는 2021년 “이탈리아는 기초과학 분야 연구개발 투자가 부족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뒤 사회적 문제가 있으면 개입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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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직도 세상엔 이해하지 못하는 물리적 현상이 많다”며 “그것들을 언젠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