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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승헌]한동훈 현상으로 곱씹어보는 법무장관이란 자리

입력 | 2023-11-28 23:45:00

언제부턴가 정치 중립과 거리 먼 인선 반복
여야 떠나 법무장관의 온전한 역할 숙고해야



이승헌 부국장


요새 한국 정치의 ‘핫 피플’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화제성으로는 윤석열 대통령은 물론 이재명 이준석을 넘어서고 있다.

지난주 대구-대전-울산 연쇄 방문에서 보여준 행보는 한동훈 현상이 얼마 못 갈 것이란 기성 정치권의 예상을 비웃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동훈의 총선 파급력을 놓고 국민의힘 내에서도 “확장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주로 민주당을 상대로 한 대야(對野) 전투력에 기반한 평가였는데 한동훈이 유권자들을 접촉하면서 드러낸 퍼포먼스는 정치 아마추어 이상이었다.

이 같은 한동훈의 본격적인 정치화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새삼 한국의 법무장관들은 왜 이리 정치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훈은 건국 후 69대 법무장관이다. 역대 장관 목록을 보니 민주화 이후 법무장관이 자주 정치적 화제에 올랐다. 그만큼 임기가 길지도 않았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5년간 8명의 법무장관이 나왔다. 그중 한 명은 ‘옷 로비 의혹’에 연루됐던 김태정 장관이다. 충성 메모 파동으로 임명된 지 43시간 만에 물러난 안동수 장관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부터 법무장관은 본격적으로 대통령의 색깔을 반영했다. 강금실 장관은 노무현의 검찰 개혁 메시지였다. 천정배 장관은 첫 수사지휘권을 휘둘러 김종빈 검찰총장과 갈등했다. 이명박 정부를 지나 박근혜 정부에선 ‘미스터 국보법’ 황교안 법무장관이 통진당 해산을 주도한 뒤 총리에 대통령권한대행까지 하며 정권의 또 다른 아이콘이 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조국 추미애 박범계가 잇따라 법무장관을 맡아 검찰 개혁을 밀어붙였으나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 탄생의 밑거름이 됐다. 그 후임인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의 명운을 가를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유니콘이 되려는 듯하다.

이쯤 되면 법무장관이 정치의 한복판에 들어서는 건 보혁과 무관하게 한국적 현상이라 할 수도 있겠다. 문제는 이게 ‘K정치’의 역동성이라기보단 비정상이라는 데 있다. 대통령의 최고 법률 참모로서 가장 중립적이어야 하고 언행이 얼음처럼 차가워야 하는 자리에, 정권을 막론하고 정치적으로 뜨거운 인사가 잇따라 임명되는 걸 정상이라 할 수 있나. 26년간 멈춰 있어서 그렇지 법무장관은 사형 집행을 명령하는 사람이다.

민주주의 역사와 전통이 다른 만큼 수평 비교할 수는 없겠으나, 미국 법무장관의 역할은 많은 걸 시사한다. 미국에서 장관은 대통령의 ‘비서(Secretary)’라고 부르지만 법무장관만이 비서가 아니라 ‘어토니 제너럴(Attorney General)’로 불린다. 머리글자를 따 흔히 AG라고도 하는데 법률 집행의 수장이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래서인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대통령과 임기를 상당 부분 함께하며 정권이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를 대변한다. 미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인 재닛 리노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8년간 임기를 함께했다. 미 역사상 첫 흑인 법무장관인 에릭 홀더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5년간 일하며 2014년 8월 미주리주 퍼거슨 흑백 갈등 사태의 중재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이미 정치의 문턱을 넘은 한동훈 현상 자체를 뭐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정권의 첨병이 아닌 법무장관의 온전한 역할에 대해 여야 가릴 것 없이 우리 사회가 한 번쯤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 법무장관 한동훈에 열광할 때 반대편에선 그만큼의 피로감을 느낄 수 있다. 이전 조국 추미애는 말할 것도 없다. 법무장관마저 진영으로 찢겨 정치적으로 소비되는 건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