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위해 재정흑자 저축하는 아일랜드 몇 년 뒤 못 보고 법인세수 탕진한 韓
박중현 논설위원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59조 원 넘게 덜 걷힐 한국과 반대로 세금이 잘 걷혀 행복한 고민을 하는 나라가 영국 서쪽 섬나라 아일랜드다. 아일랜드의 올해 재정 흑자는 100억 유로(약 14조 원)로 경제 규모가 한국의 30% 정도인 나라로선 큰 액수다. 내년엔 흑자가 162억 유로로 증가하는 등 2026년까지 650억 유로 흑자가 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주요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한 2020년에 아일랜드는 3.4% 플러스 성장했다. 재작년과 작년 성장률도 13.7%, 12.2%로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널리 알려진 대로 아일랜드는 ‘박리다매 법인세 전략’으로 성공한 나라다. 24%였던 법인세 최고세율을 2003년에 12.5%까지 낮췄다. 유로존 평균인 21.3%보다 9%포인트 낮고, 24%인 한국의 절반 수준이다. 게다가 연구개발(R&D) 비용 4분의 1을 감면해주는 등 각종 세제 혜택으로 기업들이 실제 내는 법인세율은 6%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메리트를 좇아 세계 20대 다국적 제약사 중 19곳이 아일랜드에 R&D센터, 생산시설을 두고 있다. 구글 애플 인텔 메타 등 정보기술(IT) 기업 유럽본부도 아일랜드에 있다. 앙숙인 영국이 유럽연합(EU)에서 탈퇴한 뒤에는 런던의 금융회사들이 영어가 통하는 더블린으로 몰려들고 있다. 세율은 낮아도 법인세수가 늘어나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법인세 인하 경쟁을 피하기 위해 합의한 ‘15% 글로벌 최저 법인세율’에 맞춰 아일랜드도 세율을 높여야 한다. 그간 누려온 낮은 법인세율 프리미엄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 이후에 대비해 정부가 저축에 나선 것이다.
대다수 국민이 관심 없이 넘겼을 뿐 지난 몇 년 새 한국에도 법인세 특수가 있었다. 2017년까지 50조 원대였던 법인세수는 2018, 2019년 연속으로 70조 원을 넘었다. 코로나19가 터진 2020년 일시적으로 55조5000억 원으로 뚝 떨어졌지만, 재작년에는 70조4000억 원으로 회복됐고 작년엔 103조6000억 원이란 사상 최대 규모의 법인세가 걷혔다.
그 2년간 법인세수가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은 건 코로나19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정부는 경제 전반에 팬데믹 충격이 올 것으로 봤지만 실제 피해는 자영업 등 대면경제에 국한됐다. 전 세계인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고, 각국 정부가 지원금까지 풀면서 전자제품 등 내구재 소비는 급증했다. 반도체를 위시한 한국 수출기업은 호황을 맞았고 세금도 그만큼 더 냈다. 코로나19 종료 후 수출과 법인세수가 동시에 급속히 감소한 데에는 팬데믹 특수의 거품이 꺼진 영향이 크다.
현명한 정부라면 이런 특수 상황에서 세금이 더 걷힐 때 그 뒤 찾아올 세수 감소를 대비해야 한다. 아일랜드 정부가 지금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청와대 관계자가 ‘곳간에 재정을 쌓아두면 썩는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할 정도로 더 걷힌 세금을 쓸 곳에만 골몰했던 문재인 정부에선 기대할 수 없던 일이다. 올해 급감한 세수를 놓고 더불어민주당은 달랑 1%포인트 깎아준 법인세율, 부자감세 때문이라며 ‘국가 부도 위기’ 운운하고 있다. 염치없는 일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