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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한달, ‘親이 vs 親팔’ 쪼개진 세계

입력 | 2023-11-06 03:00:00

[중동전쟁 한 달]
親이 “하마스 인질 먼저 석방해야”
親팔 “잔인한 민간인 학살 멈춰야”
이, 美의 교전 일시중단 제안 거부




4일에는 영국 런던 트래펄가광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에서 시위대가 영어로 ‘팔레스타인 해방’을 쓴 플래카드와 팔레스타인기를 들고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을 비판했다. 런던=AP 뉴시스

“이스라엘이 하마스 제거를 위해 (가자지구를) 공격한다는데, 지금껏 죽은 아이들이 하마스와 무슨 상관인가요?”

4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 시내의 한 식당. 입구에는 팔레스타인과 이집트 국기가 나란히 걸려 있었다. 식당을 찾은 이집트인 노하 씨(45)는 격화되고 있는 중동전쟁에 대해 이같이 반문하며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대원들을 얼마든지 공격해도 좋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일방적인 ‘인종청소’나 마찬가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당 관계자는 “이스라엘의 공격에 함께 분노하고, 찾는 손님들도 비극을 생각해보고 연대하자는 취지로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걸었다”고 설명했다.

1일(현지 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이스라엘 지지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납치한 민간인 인질의 사진과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하마스를 규탄했다. 프라하=AP 뉴시스

반면 유럽, 미국 등에선 주말 동안 ‘반(反)유대주의에 반대한다’며 하마스에 민간인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가 열렸다. 이들은 “휴전을 위해선 하마스가 볼모로 잡고 있는 인질부터 먼저 석방하는 게 맞다”며 이스라엘 정부의 방침을 지지했다.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전쟁이 6일로 한 달을 맞았다. 전쟁 발발 직후 하마스의 잔인한 민간인 학살 사례가 알려지며 국제사회에는 이스라엘의 보복을 지지하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대규모 공격으로 전쟁이 격화되며 확전 우려와 민간인 피해가 커지자 세계는 친(親)이스라엘과 반이스라엘 여론으로 쪼개졌다. 일시적 교전 중단(pause)이나 휴전(ceasefire)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 전쟁 이후 세 번째 중동을 찾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3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하마스 테러를 끝내면서도 민간인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언급하며 민간인 대피를 위한 일시적 교전 중단을 설득했다. 그러나 네타냐후 총리는 “인질 석방 없는 교전 중단을 거부한다”며 퇴짜를 놨다. 같은 날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 최고지도자가 연설에서 “전면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은 현실이 될 수 있다”고 위협하면서도 아직은 제한적 참전에 무게를 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강경한 방침으로 중동전쟁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민간인 희생 늘며 갈등 커져… 아랍권 ‘反유대 불매운동’ 최고조


‘친이 vs 친팔’ 쪼개진 세계
과거 이-팔과 교류했던 아랍국가들
맥도널드 등 이 관련 기업 보이콧
美-유럽 등 “인질 석방” 집회 이어… “당장 휴전” 이 규탄 시위 잇따라

4일(현지 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만난 시민들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상황에 대해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를 꺼렸다. 이스라엘군과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양측의 전력이 비슷하지도 않은 데다 군사시설뿐만 아니라 민간인 거주지에도 이스라엘군의 일방적 폭격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념품 상점을 운영하는 한 이집트인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하마스도 잘못했지만 더 많은 민간인이 다칠 것을 알면서 폭탄을 쏟아내는 이스라엘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이집트에는 과거 이스라엘과 대규모 중동전쟁을 벌인 탓에 반(反)이스라엘 정서가 있기는 하지만 가자지구 및 이스라엘과 국경을 맞대고 양쪽 모두와 비교적 교류가 잦았다. 그런 이집트인들이 “다른 중동국가 사람들 생각도 우리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며 방송을 통해 연일 전해지는 민간인 피해 소식과 확전 위협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살피고 있었다.



● 아랍권에 퍼진 反이스라엘 불매 운동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가 급증하면서 이스라엘과 아랍권 사이 지지하는 세력에 따른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다. 최근 카이로에선 잇따른 반이스라엘, 친(親)팔레스타인 시위가 자주 열리고 있다. 긴장 국면이 이어지면서 4일 카이로 시내에 있는 이스라엘대사관과 팔레스타인대사관 앞에는 각각 대규모 무장 경찰이 주둔하며 혹시 모를 테러 위협에도 대비하고 있었다.

이집트 당국은 허가되지 않은 집회 관련 참가자 100여 명을 구금하는 등 최근 강경 대응에 나섰다. 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들며 “즉각 이스라엘은 휴전하라”거나 “이스라엘은 없어져야 한다”며 규탄했다. 이 밖에도 상점, 주택가, 차량 등에도 연대 취지로 팔레스타인 국기를 걸어 놓은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집트 일간 알아흐람은 “최근 수년간 중동권에서 벌어진 반이스라엘 보이콧 움직임 중 역대 최대이자 가장 영향력이 막대한 수준”이라고 3일 전했다. 특히 이스라엘 맥도널드가 이스라엘군에 무료 음식을 제공한다고 밝히자 불매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이스라엘에 후원을 했거나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다는 이유로 스타벅스, 코카콜라, 네슬레, 넷플릭스 등의 기업이 타격을 입고 있다. 관련 기업의 광고를 찍었던 유명 배우들도 소셜미디어에서 ‘댓글 공격’을 당하자 팔레스타인 지지 입장을 밝히며 진화에 나섰다. 이들은 “불매운동이 팔레스타인을 해방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연대는 보여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 같은 불매운동이 무차별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누리꾼은 특정 기업을 거론하며 “이 업체가 이집트 브랜드인가, 외국 브랜드인가”라고 반문했다. 심지어 외국인들에게도 “요즘 맥도널드를 배달시켜 먹으면 안 된다”며 훈계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 세계 곳곳서 “휴전하라” 시위 봇물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유럽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선 휴전을 촉구하고 이스라엘을 규탄하는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프랑스 파리 도심에선 수천 명의 시위대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공모하는 것”이라고 외쳤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7일 개전 이후 프랑스 당국이 허가한 합법 시위 중 최대 규모로 꼽힌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선 시위대가 길을 막고 앉았다. 이들은 “지금 당장 휴전하라” “우리는 모두 팔레스타인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반면 친이스라엘 집회도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3일 독일 dpa통신에 따르면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전날 ‘반유대주의에 반대한다’며 하마스의 ‘인질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에 약 2만 명이 참가했다. 4일 캐나다 퀘벡 맥길대에서 열린 집회에선 일부 극우 성향 참가자들의 “더 많은 팔레스타인 아이들을 죽이라”는 과격 구호까지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학가와 언론계에서도 갈등이 격화하는 모양새다. 미 코넬대는 학내 갈등 격화로 긴급 휴교 방침을 내렸다. 미 뉴욕타임스(NYT) 기자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을 대량학살 시도라고 비판하는 성명에 서명했다가 NYT의 정책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고 사임했다. 해당 성명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을 조건부 지지한 NYT 사설도 비판했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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