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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소아청소년 심장 환자 수술의사 국내 33명뿐, 2035년엔 17명만 남아”

입력 | 2023-10-10 03:00:00


경북 안동에 사는 14세 김모 군은 최근 저녁에 극심한 가슴 통증을 느꼈다. 지역 병원을 찾았으나 소아과 의사도, 소아심장 전문의도 없었다. 병원 3, 4곳을 전전하다가 결국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서울의 큰 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진단명은 심장 부정맥의 일종인 ‘상심실성빈맥’. 응급치료만 받으면 위급 상황을 넘길 수 있는 질병이지만 거주지 근처에 전문의가 없어 생명이 위험할 뻔했다.

소아청소년 심장 환자를 돌볼 수 있는 의사가 2035년에는 우리나라에 111명밖에 남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특히 가슴을 열고 심장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소아심장외과 전문의는 단 17명만 남게 될 것으로 나타나 필수의료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9일 동아일보가 입수한 대한소아심장학회 보고서에 따르면 심장혈관흉부외과 소아심장외과 전문의는 올해 33명이지만 2035년엔 17명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의사 연령, 은퇴, 신규 지원자 등을 토대로 추계했다. 심장 질환을 검사하고 비(非)수술적 치료를 하는 소아청소년과 소아심장 전문의(내과)도 올해 129명에서 2035년 94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모두 소아(0∼9세), 청소년(10∼19세)을 주로 진료한다. 국내 소아청소년 심장질환 환자는 소아가 연 5000명, 청소년이 연 1만여 명이다. 2021년에는 각각 5454명, 1만1861명이었다. 학회 관계자는 “미국 보스턴 소아병원은 소아심장 교수만 100명, 필라델피아 소아병원은 80명”이라고 말했다.





소아청소년 심장수술의사 평균 52세 고령화… 지원율은 3.3%뿐


소청심장 수술의사 33명
과로-소송 위험에 소청과 지원 기피
30, 40대 전문의 줄고 50, 60대 늘어
은퇴자 늘며 진료-수술 공백 심각

생후 2주인 지은이(가명)의 엄마는 제주에 살았다. 그는 지은이를 출산하기 전 제주의 한 병원에서 받은 산전 초음파에서 태중에 있는 지은이의 심장 심실에 큰 구멍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제주에는 지은이를 치료할 수 있는 의사가 없었다. 그는 서울로 올라와 대형 종합병원에 입원한 끝에 지은이를 출산했다.

● 의사 부족에 서울 월세 살며 치료
지은이는 이뇨제를 복용하면서 퇴원했지만, 본격적인 수술을 받으려면 1, 2개월을 대기해야 했다. 제주의 집에서 서울에 있는 병원을 오가려면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수술을 기다리는 동안 응급 상황이 생기기라도 하면 제주에서는 해결하기가 어려웠다. 가족들은 결국 서울에서 병원 근처에 ‘월세’를 얻어 수술을 받을 때까지 버티기로 했다.

대한소아심장학회에 따르면 현재 진단 및 비수술 치료를 담당하는 소아심장 전문의(내과)는 129명, 수술을 맡은 소아심장외과 전문의는 33명이다. 소아 청소년 심장질환 환자는 1만7315명(2021년 기준). 소아심장 전문의 1명당 매년 새 환자 107명을 돌보는 셈이다. 학회는 “심장질환은 수술 후에도 계속 치료해야 해 환자가 매년 누적된다”며 “더구나 실제 소아심장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 의사들도 많다. 제대로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의는 70여 명”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상황의 근본적인 원인은 ‘지원자’가 없기 때문이다. 올해 하반기 전공의 지원율을 보면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모집 인원은 143명인데, 4명(2.8%)이 지원했다. 심장혈관흉부외과는 30명 중 1명(3.3%)이 지원했다. 기존 의사들은 고령화되고 있다. 2011년 소아심장외과 전문의 평균 연령은 48세였지만 올해는 52세로 높아졌다. 김기범 학회 정책이사는 “30, 40대 전문의는 급격히 감소하고 50, 60대가 늘었다”며 “은퇴 의사도 증가하면서 의료 현장의 진료, 수술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 과로-소송 위험… 소아심장 기피하는 의사들
학회가 최근 소속 소아심장 전문의 12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35%는 “일주일에 80시간을 초과해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비수도권의 경우는 응답자의 55%가 “주 91시간 이상 근무한다”고 답할 정도로 업무량이 과도했다. 또 70%가 의료분쟁소송 경험도 있다고 했다. 이에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다시 선택한다면 같은 전공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과도한 업무량과 각종 의료 소송 등으로 대부분 ‘번아웃(탈진)’ 상태에 몰린 것으로 보인다.

학회는 “지속 가능한 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긴급한 과제”라며 “소아 청소년 환자들에 대한 의료 수가 인상, 이들의 진료 및 수술 과정에서의 불가항력적 의료 사고에 대한 국가 보상 확대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학회는 또 종합병원급 의료 기관에서 소아심장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한 충분한 수의 전문의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역 혹은 권역별 소아심장센터 지정을 통해 지역 의료를 활성화시켜 의료 공백을 막아야 한다는 제안도 있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