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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길 산책 중 만나는 열린 문화쉼터

입력 | 2023-09-11 03:00:00

[더 나은 일상으로, 공간복지]〈5〉 경기 수원시 ‘후소’
160년 전부터 이어진 부촌 가옥… 누구나 한 번 가보고 싶었던 집
市가 사들여 문화 공간으로 개조
집 원형 보존한 고즈넉한 공간서… 예술작품 감상하며 책 읽는 여유
산책 중 쉬어가는 편안한 쉼터로



경기 수원시가 리모델링해 문화공간으로 활용 중인 ‘후소’의 1층 전시공간 모습. 수원시 제공


경기 수원시 남창동 팔달산 아래 행궁길을 200m가량 걷다 보면 정원이 잘 가꿔진 이층집이 나온다. 수원 출신 미술사학자 고 오주석 선생(1956∼2005)의 호 ‘후소’에서 이름을 따 2018년 9월 문을 연 문화공간 ‘후소’다.

‘후소’는 논어의 ‘회사후소’에 나오는 말로 ‘모든 일은 기본을 잘 갖춘 후에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 옛 구조 그대로 살린 ‘시민 쉼터’


후소의 입구 모습. 수원시 제공

이곳은 일제 강점기 수원 최고의 부자로 불리던 양성관의 ‘남창동 99칸 집’이 있던 자리다. 이후 남창동 99칸 집터는 38개 필지로 나눠 매매가 이뤄졌다. 일부는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10월 용인시 한국민속촌으로 이전됐고, 일부는 수원 ‘백 내과병원’의 백성기 원장이 사들여 자택을 지었다.

백 원장은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건축가 김석철에게 의뢰해 1977년 1170㎡(약 350평)의 터에 연면적 334㎡(약 100평) 규모의 집을 세우고 40여 년 동안 거주했다. 그러다 2017년 11월 수원시가 주택을 사들인 후 리모델링을 거쳐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오가는 시민들이 한 번쯤 들어가보고 싶어했던 근사한 저택이 행궁길 여행 중 가볍게 산책하듯 즐길 수 있는 친근한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후소 건물 1층은 전시공간, 2층은 ‘오주석의 서재’로 꾸며졌다. 1층은 방 2개와 거실, 주방, 화장실 등을 갖춘 전형적 주택 구조인데 두 방은 터서 교육·회의실로 만들었다. 거실은 전시실, 입구 맞은편에 있는 주방은 사무실이 됐다. 작지만 아늑한 전시실에선 지역 출신 다양한 예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주택을 개조한 공간인 만큼 1층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와야 한다.

오래된 나무계단을 걸어 2층으로 가면 가장 먼저 책 향기가 느껴진다. 오주석 선생은 김홍도 등 옛 그림에 대한 다양한 저술과 독창적인 전시기획으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가 남긴 저서와 연구자료 등이 2층에 전시돼 있다. 전시품도 전시품이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정원과 팔달산의 고즈넉한 모습이 마치 화폭에 담긴 풍경을 연상케 한다. 작은 방에선 풍속화 등을 서양의 클래식과 함께 즐길 수 있다. 수원시 관계자는 “지역에서 워낙 유명한 장소라 건물 활용 방안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하다 문화예술공간을 겸한 시민 쉼터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 담장 낮추고 ‘열린공간’ 연출


시민 쉼터인 만큼 건물 외부공간에도 개방감을 주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적용했다. 먼저 입구 앞에 있던 차고 자리는 작은 잔디밭으로 바꿔 누구나 쉬어갈 수 있게 했다. 3, 4m가량이던 담장은 1m 정도로 낮췄다. 정문에는 철문 대신 제주도 전통주택의 대문 역할을 하는 ‘정낭’을 설치해 ‘열린공간’임을 강조했다. 1층 현관으로 이어지는 마당에는 나무판을 설치해 내부 공간이 확장되는 느낌을 연출했다.

이 자리는 ‘양성관 99칸 집’ 또는 ‘백원장 자택’으로 유명하지만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조선시대 수원 최고 부자로 알려진 이병진의 집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이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근택(1865∼1919)이 수원으로 와 죽을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알려졌다.

이렇듯 대대로 부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부지는 전체 부지가 5200여 ㎡(약 1600평)에 달한다. 광복 후 일부는 수원지방검찰청, 남창동사무소 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수원시 관계자는 “옛 건물과 공간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