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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은 왜 지금 이념 전쟁을 하고 있나 [오늘과 내일/이승헌]

입력 | 2023-09-06 00:00:00

尹, 이념 무장 없던 이명박 박근혜 전철 거부
포용, 협치로는 오히려 총선 어렵다고 본 듯



이승헌 부국장


“윤석열 대통령이 이렇게 이념 지향적인 사람이었나?”

최근 광복절 경축사부터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이 이런 말을 주고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 정치에서 이념은 좌파 진영의 전유물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21세기 보수 대통령인 이명박 박근혜는 이렇다 할 이념이랄 게 없었다. MB는 국정에 비즈니스를 접목한 실용주의를 추구했다. 박근혜는 지금도 그 정확한 정의를 알기 힘든 창조경제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지향점 자체가 불분명했다. 이전 노무현 대통령이 워낙 이념 과잉이라 그 반작용으로 탈이념을 추구한 면도 있었겠지만, 둘 다 국정의 철학적 골간은 부족했다. 지지층이 공유하는 핵심 이념도 없었다. 정치권에선 두 대통령 모두 정권 초기에 휘청거린 배경을 여기서 찾는 사람도 있다. 각각 광우병 괴담 파동과 세월호 사건이라는 외부 충격에 이념적 연대감 없는 지지층이 순식간에 흔들렸다는 것이다. 아파트로 치면 이념이라는 축대와 철근이 빠지거나 약한 ‘순살 정권’ 같은 것이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전후로 이념을 강조하는 건 이런 맥락과 무관치 않다. 이전 보수 정권에 대한 학습 효과 같은 것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비극은 절대 반복하지 않겠다며 5년 내내 지지층만 보고 정치한 것처럼, 윤 대통령은 이명박 박근혜처럼 이념적 갑옷 없이 물렁물렁하게 국정 운영했다가 좌파들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사실 윤 대통령은 취임사부터 이념을 강조했다. 그 정치적 텍스트와 의미를 처음엔 잘 몰랐지만, 국정을 운영하며 구체적인 조치들이 더해지면서 광복절 경축사 전후로 또렷해지고 있다. 처음엔 자유민주주의, 인권 이런 것이었는데 요즘 들어 공산주의, 야당이 부분적으로 배경에 있는 이권 카르텔 등으로 타깃이 구체화되면서 본격적인 충돌음을 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윤 대통령은 이념 드라이브를 통해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내려는 것일까. 필자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섣부른 포용이나 어설픈 타협보다는 확실하게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조국 추미애를 거쳐 이준석 김종인 유승민 홍준표를 지나 이재명까지 경험하면서 이 시점 한국 정치에서 포용이나 협치는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내년 총선에서 표로 연결될 전망이 분명치 않은 호남권에 대한 구애나 중도층 공략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지지층을 넓히는 데 효과적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미 윤 대통령은 민노총과의 정면 대결, 친일파 논란을 감수한 한일 관계 복원 이니셔티브, 문재인 정권의 친중 노선 지우기 등 집권 후 몇 가지 이념적 이슈에서 비교적 성공을 거둔 바 있다. 국정 수행 지지율은 이슈마다 널뛰었지만 지지층은 긍정 평가했다. 지금의 이념 드라이브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대상과 폭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총선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전통적인 총선 전략으로 보면 역대 보수 정권은 이념의 틀을 넓힐 때 선거에서 승리한 적이 많다. 1996년 총선에서 김영삼 정권이 이재오 김문수 등 강성 운동권을 영입해 외연을 확장했고, 2012년 총선에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당 색깔을 빨간색으로 바꾸고 경제민주화를 채택해 과반을 일궈냈다. 물론 세상과 유권자는 그때와 같지 않고 무엇보다 용산 대통령실의 생각이 다르다. 윤 대통령의 이념 드라이브는 계속될 것이다. 그 성패는 총선일인 내년 4월 10일, 앞으로 217일 후면 알게 된다.




이승헌 부국장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