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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승련]‘거짓말’ 트럼프는 지지율 1위, 믿었던 지지자는 징역 17년

입력 | 2023-09-01 23:51:00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TV토론이 열렸다. 사회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인 우월주의 단체나 무장단체를 향해 폭력 시위를 중단하라고 당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단체를 거론하라는 말인가”라고 운을 뗀 뒤 “프라우드 보이스여. 몇 걸음 물러나 기다리고 있으라(Proud Boys. Stand back and stand by)”고 말했다. 질문도 이례적이었고, 그런 질문에 단체 이름을 댄 답변도 매우 낯설었다.

▷미국 법원이 바로 그 트럼프 지지 그룹 ‘프라우드 보이스’의 지도부 2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모두 30대 후반인 피고인 조 비그스, 재커리 렐은 2년 전 이 단체 소속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각각 징역 17년, 15년을 선고받았다. 난입 며칠 전 트럼프는 과격 지지자들을 향해 “1월 6일 워싱턴 시위에 오라. 매우 거칠(wild) 것이다”라고 선동했고, ‘프라우드 보이스’ 회원들은 “자유 미국인으로 살자. 네 무기를 갖고 와라”는 글을 돌렸다.

▷사건 수사와 재판이 2년을 넘기면서 미국 방송의 의사당 현장 촬영 영상, 경찰의 채증 촬영물, 두 피고인이 트위터에 올린 영상물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다. 영상 속 두 사람은 확신범이었다. 바이든 당선을 의회가 선포하는 날에 맞춘 습격을 제2의 독립전쟁으로 불렀다. 난입 전날에는 “복면을 쓰고 가자. 트럼프는 역시 최고의 지도자다”라며 선동했다. 카메라에 찍힌 렐은 경찰 여럿의 얼굴에 화학물질 스프레이를 뿌렸다.

▷트럼프를 폭력적으로 지지했던 두 사람은 법정에서 후회한다며 흐느꼈다. 비그스는 “그날 군중심리에 휩쓸렸다. 평생 후회하면서 살겠다”며 선처를 호소했고 “나는 테러범이 아니니 딸아이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렐 역시 “정치에 질려버렸다. 나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거짓을 퍼뜨리는 것도 이젠 마지막”이라고 쓴 최후 진술문을 읽었다. 읽는 도중 번번이 눈물을 훔쳤다. 1심 법원은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의사당 폭력엔 여러 트럼프 지지 단체가 개입했다. 전국에서 1100명이 체포됐고 630명이 기소됐으며 110명이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악의 민주주의 파괴 범죄였지만 이들을 이용한 트럼프는 건재하다. 4차례 기소되면서 머그샷을 찍는 굴욕을 겪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공화당 대선 후보 1위를 지키고 있다. 판결 보도가 나온 뒤 하루가 지나는 동안 트럼프는 일절 반응이 없다. 이런 역설을 트럼프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선동하는 정치인, 휩쓸려 추종하나 위기의 순간은 홀로 견뎌내야 하는 극렬 지지자. 이런 관계가 만드는 비극은 동서고금 어디서건 반복되지만 교훈은 잘 전파되지 않고 있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