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북토크 프로그램에 이어 나무 탐방 산책-가족 대화까지 대형 온라인 서점은 할 수 없는 일상 나누는 커뮤니티로 변신
서울 용산구 책방 죄책감에서 12일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얼굴을 그리는 프로그램 ‘우린 서로 잘 알지만, 잘 몰라요’가 열렸다. 참여한 가족들이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들어보였다. 홍진일 책방 죄책감 대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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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얼굴을 자세히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거랑 다르게 생겼어!”
서울 용산구에 있는 책방 ‘죄책감’에서 12일 엄마의 얼굴을 그리던 한 아이가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날 약 33㎡(10평) 규모의 작은 책방에서는 부모와 자녀가 서로의 얼굴을 관찰한 뒤 그림을 그리는 가족 프로그램 ‘우린 서로 잘 알지만, 잘 몰라요’가 열렸다. 한 엄마는 자신의 어깨 위로 훌쩍 커버린 딸의 얼굴을 스케치북에 그리며 “매일 봐서 몰랐는데 우리 딸 언제 이렇게 컸느냐”고 말했다.
지난해 문을 연 이 책방에서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홍진일 책방 죄책감 대표(47)는 “최근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사고를 지켜보며 인간관계의 단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며 “책방을 운영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가 관계의 기본인 가족과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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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이 이런 프로그램을 도입한 건 대형 서점은 할 수 없는 동네 책방만의 역할을 찾기 위해서다. 관악구의 책방 ‘회전문서재’는 올해 3월부터 매주 수요일마다 4∼6명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글을 읽는 낭독회를 열고 있다.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좋았다. 1인당 7만5000원(한 달 기준)을 내고 참여한 이들은 “내 얘기에 다정한 마음을 드러내줘 기뻤다” “나만의 색깔을 찾을 수 있게 됐다”며 호평을 남긴 것. 안서진 회전문서재 대표(35)는 “앞서 4년간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결국 책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회사나 학교, 가족에게는 말할 수 없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글로 남기고 타인에게 터놓기에는 소규모 동네 책방이 제격”이라고 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인간관계가 단절된 요즘, 동네 책방이 사람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책방이 지닌 중요한 사회적 역할일 뿐 아니라 대형 서점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동네 책방만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